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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4일. 건국절이 아니라 광복절을 하루 앞둔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입니다. 정부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로 알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지정하고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8월 14일은 '세계 위안부의 날'이기도 합니다. 1991년 8월 14일 故 김학순 할머니가 대한민국 내 거주자로는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는데요. 2012년 12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는 이날을 기려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의 날'로 정했죠.
오늘(14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이용수·김경애 할머니 세 분과 시민단체·학계·여성계 인사 등 3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기념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여성인권과 평화, 연대의 차원으로 인식하고 확산할 수 있도록 미래세대인 청소년과 국제사회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식전 공연, 국민의례, 편지낭독, 기념사, 기념공연 순으로 약 40분간 진행됐죠.
기념식의 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영화 '에움길'의 이승현 감독이 맡았고, 식전공연에서는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청아라 합창단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노래 '그 소녀'를 불렀으며, 교내 수요집회, 위안부 역사 바로알기 행사 등을 추진해온 서울 무학여고 학생들이 애국가 제창을 선도하기도 했습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의 기념사 다음으로는 연극배우 강애심, 청소년 동아리 팀 스타일, 가수 이윤지 등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독백을 시작으로 할머니의 고통, 상처 등을 청소년들이 무용과 노래로 표현하는 기념공연 '할머니와 우리의 여정'을 펼쳤구요. 마이크 혼다 전 미국 하원의원, 프랭크 퀸테로 글렌데일시 시의원, 엔소니 포탄티노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아찬 실비아 오발 골든위민비전 인 우간다 대표 등 국제사회의 인사들이 평화와 인권을 위해 연대하겠다는 메시지 영상과 뮤지컬 배우 정선아·청아라합창단이 부르는 '우리가 빛이 될 수 있다면'을 마지막으로 기념식을 마쳤습니다. 청아라합창단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부채 등을 세 할머니에게 전달해 드리고,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끌어안아주는 모습은 무척 감동스러웠죠.
언론에서는 이날 위안부 피해자였던 어머니에 대한 유족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낭독한 배우 한지민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도 했습니다. 신분 공개를 원하지 않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두 유족을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하여 한지민이 이를 대독한 건데요. 한지민은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김복동'에 내레이션으로 참여하기도 했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의 상영관 앞, 일본 대사관 앞 등 약 8년동안 200회 이상의 재능기부 연주를 펼쳤던 변미솔 양(서울예고)의 플루트 연주에 맞춰 편지를 담담한 목소리로 읽어나간 한지민은 목소리가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등 북받치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죠. 편지의 전문을 아래 달아둡니다.
엄마가 일본군 위안부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뭔지 무슨 일을 겪으신 건지 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1942년. 그러니까 엄마 나이 열일곱. 전쟁 때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가신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신 거구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다친 어깨와 허리 때문에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면서도,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신 건지 엄마한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무섭기만 했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습니다. 혹시라도 내 주변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일본말도 잘하시고 가끔은 영어를 쓰시기도 하셨지만,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 얘기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며 제게도 항상 신신당부하시곤 했었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써 외면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모른 체하고 싶었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
엄마, 엄마가 처음으로 수요 집회에 나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어디 가시는지조차 몰랐던 제가 그 뒤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해.
엄마는 강한 분이셨어요. 그러나 엄마는 그렇게 바라던 진정한 사죄도, 어린 시절도 보상받지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의 싸움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티셨습니다.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반드시 엄마의 못 다한 소망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한편 오늘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을 비롯해 약 2만여 명(주최측 추산)이 참여한 가운데 정의기억연대가 진행하는 제1,400회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습니다. 마침 국내적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국제적으로는 세계 위안부의 날과 수요일이 겹치게 되면서 12개국 37개 도시 54곳에서 연대 형식으로 수요집회가 진행됐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과 학술회의, 집회, 전시가 열렸죠.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현재 20명, 과거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은커녕 과거에 대한 부정을 뛰어 넘어 되려 한국에 경제적 보복을 가하고 있는 일본 정부를 강하게 규탄합니다. 진실은 감출 수 없습니다.
오늘의 키워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세계 위안부의 날 #한지민 #수요집회 #김학순 할머니 #변미솔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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