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계의 거장인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백건우의 부인은 196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사했던 배우 윤정희입니다. 남인순, 문희와 함께 당대 최고의 배우로 활약했던 윤정희는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뒤 7년동안 무려 3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통해 절정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1974년 서강대 총장의 도움으로 파리의 소르본느대학교에 유학을 간 윤정희가 백건우와 만나 결혼을 하게 됐는데, 1976뇬 화백 이응노의 주례로 결혼을 하게 됐죠. 두 사람의 결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바람기와 육영수 여사가 연관되어 있다는 썰이 있긴 하지만 뭐 그건 어디까지나 썰이니까...
어찌됐건 백건우 - 윤정희 부부는 잉꼬도 질투할 정도의 금슬을 보여왔습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주 활동을 하는 백건우의 옆에는 항상 윤정희가 함께 있었고, 두 사람이 손을 꼭 잡은 채 돌아다니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알려지곤 했죠. 2010년 만 66세의 윤정희는 영화 '시'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명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윤정희가 받은 여우주연상만 24개니까요. 그야말로 '대배우'라는 표현이 가장 걸맞는 배우죠. 아, 백건우와 함께 납북 당할 뻔한 적도 있었죠? 올해 결혼 45주년을 맞은 부부는 한국에서 은관문화훈장, 프랑스에서 문화 예술 공로훈장을 모두 받은 최초의 한국인 부부입니다. 백건우는 윤정희에 대해 "제게 가장 엄한 평론가이고 제 음악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죠.
그런데 윤정희가 10년째 알츠하이머(치매)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대중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10일 백건우는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윤정희가 10년 전부터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였다. 둘이 연주 여행을 다니며 함께 지내왔지만, 최근에는 딸이 있는 파리에서 요양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두 사람은 언제 어디에나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 특히 백건우의 연주 여행을 위해 전 세계를 함께 했죠.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인 이후로도 백건우와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백건우 본인이 윤정희를 제일 잘 아니까 최대한 간호를 해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환경이 계속 바뀌니 여기가 서울인지, 파리인지, 뉴욕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모르는 등 윤정희 본인이 너무 힘들어 했다고 하더군요. 결국 딸이 있는 파리에서 요양생활을 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현재 윤정희는 백건우가 그녀를 위해 가장 편한 환경으로 만들어둔 딸의 옆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윤정희는 100번 정도 같은 질문을 하고, 요리하는 법도 잊어먹어 재료를 막 섞어놓고 밥을 먹은 뒤 치우고 나자마자 다시 밥을 먹자는 말을 할 때도 있고, 딸도 못 알아볼 정도라고 합니다. 백건우의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 이날 인터뷰에 함께 나와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때 가장 힘들다. '엄마'라고 부르면 '왜 나를 엄마라 부르냐'고 되물었다. 내 턱에 바이올린 자국을 보여주며 '엄마 딸은 여기 자국이 있는 사람이다. 바이올린을 했다'고 설명했다"고 밝히기도 했죠.
백건우와 백진희가 윤정희의 알츠하이머 투병을 뒤늦게 고백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윤정희가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공교롭게도 알츠하이머를 앓는 미자 역할을 맡았죠. 이때부터 윤정희의 알츠하이머가 시작된 거고.. 이 당시에도 배우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긴 대사는 써놓고 읽으며 연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영화를 하나 더 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도 받아 백건우와 함께 구상했는데, 잘 되지 않더라는 것. 상을 받으러 올라가기도 쉽지 않았다고 하구요.
현재 알츠하이머로 고생을 하면서도 윤정희는 "오늘 촬영은 몇 시야"라고 물어보곤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배우로 오래 살았던 대배우 윤정희. 백진희 씨는 "이 병을 알리면서 엄마가 그 사랑을 다시 확인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엄마에게 사랑의 편지를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 지금 엄마에게 그게 정말 필요하다"고 자신의 소망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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