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8일) 헌법재판소에서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금지한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9명의 재판관 전원이 해당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명했는데, 위헌 결정을 내린 6명(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이영진 정정미 정형식)과 달리 3명(이종석 김형두 이은애)은 위헌보다는 헌법불합치로 결정하며 국회에 개선 입법 시한을 줘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결국 6대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이 내려져 해당 조항은 즉시 무효가 됐습니다.
이번 위헌 결정의 이유는 시대적 변화에 따른 성평등 의식 확대. 과거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여아 낙태를 막자는 취지에서 법으로 금지했지만 실효성이 없다고 본 것이죠. 또한 최근 임신중절 시기 통계 등도 결정의 근거가 됐습니다. 헌재는 "양성평등 의식이 자리잡고 유교사회 영향인 남아선호사상이 확연히 쇠퇴하고 있다"면서 "통계청 출생성비를 보면 2014년부터는 성별과 관련해 인위적 개입이 있다는 뚜렷한 징표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인공임신중절의 90% 이상은 태아의 성별을 모른채 이뤄져 태아 성별과 낙태 사이에 유의미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죠.
그리고 부모의 알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된다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헌재는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라며 "태아의 성별을 비롯해 모든 정보에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당연히 누리는 권리"라고 밝혔습니다. 헌재는 "(성별 고지 금지 조항은) 태아 생명 보호라는목적 달성에 효과적이지 않고 입법수단으로서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낙태를 금지하려면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금지할 게 아니라 낙태 관련 법개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죠.
태아 성 감별 금지 조항은 남녀 선별 출산, 성비 불균형을 막기 위해 1987년 제정됐습니다. 헌재는 2008년 7월 이 조항이 헌법에 맞지 않는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2009년 12월 임신 32주가 지나면 성별을 고지할 수 있도록 의료법이 개정돼 현재까지 시행돼왔죠. 하지만 많은 임산부들은 이를 끊임없이 알고 싶어했고,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은 색깔이나 장난감 종류 등으로 눈 감고 아웅을 해야 했습니다. 32주전 부모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1년 범위에서 의사 자격이 정지되기도 했죠.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에 대해 현실적으로 태아의 성별 확인은 의료인이 아닌 부모가 원한다. 의료인이 아닌 부모의 이익 또는 희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의료인에게 태아의 성별을 확인·고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의료인이 이에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런데 태아 성감별 금지법 위반은 '의료인'에게만 적용된다. 이처럼 부모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요구한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이익이 거의 없는 의료인만 처벌하는 것은 기존의 낙태죄와 비교하더라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해왔고, 산모 역시 유아용품 구입 등 출산 준비를 위해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고 남아선호사상이 거의 사라진 사회 변화에 따라 부모의 알권리를 위해 성별 고지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2022년과 2023년 연이어 '해당 의료법 조항이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 접근권과 행복추구권, 의료인의 직업수행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의료법 20조 2항 위헌확인이 제출되어 오늘의 결정에 이르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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