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정말 한결같습니다. 고쳐쓸 수 없는 부류의 인간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10 총선 이후 사의를 표명한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낙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직접 브리핑을 통해 정진석 비서실장을 소개했습니다. "정진석 전 국회부의장은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이라면서 정진석 의원의 경력을 소개한 윤석열 대통령은 정계에서도 여야 두루 아주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계시다고 여러분 잘 아시고 계실거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비서실장으로서 용산 참모진 뿐만이 아니라 당 야당 언론과 시민사회 모든 부분에 원만한 소통을 하면서 직무를 잘 수행해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간 후임 비서실장에는 정말 다양한 인사들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추천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을 시작으로 정진석 의원,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과 최경환 전 부총리, 이정현 전 청와대 민정수석, 심지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까지 거론되어왔죠.
윤 대통령은 최근 비밀리에 정진석 의원과 만나 장시간 대화를 나누며 비서실장직을 이미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홍준표 시장부터 시작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비밀리에 잘 만나고 다니네요. 정진석 의원은 국회 부의장을 지낸 5선 중진 국회의원입니다. 청와대 정무수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국회사무총장,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을 지내 정무 감각과 인맥, 경륜을 두루 보유했다는 평가가 있죠.
정진석 의원의 아버지는 경찰 출신으로 현재의 경찰청장인 내무부 치안국장을 시작으로 강원도지사, 충청남도지사를 거쳐 정계 입문 후 총 6선 국회의원과 더불어 전두환 정권에서 입각했던 정석모 전 내무부 장관입니다. 우격다짐식 막말로 인한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고 하는데요. 정진석 의원은 아버지에게서 지역구를 물려받아 충남 공주·부여·청양을 지역구로 활동했으나 이번 총선에서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한 상태였죠.
정진석 의원은 친윤계의 좌장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1년 3월 검찰총장직 사의를 표명하자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면서 동네 건달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간 한신보다 더 큰 치욕을 받아가면서 싸운 그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민의힘 당내에서 윤석열 영입을 두고 내분이 일자 "묵은 감정은 정권교체의 큰 강물에 씻어버려야 한다" "윤석열은 우리 사법체계에서 주어진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정진석 의원은 2021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출마 선언 자리부터 윤 대통령과 함께 했고, 당내 대선 경선 라이벌이었던 홍준표가 윤석열에게 "적군인지 아군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하자 정진석 의원은 "홍준표 의원이 적군인지 아군인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홍준표가 정 의원을 향해 "신중히 처신하라"고 쏘아붙이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반사' 두 글자를 써 웃음을 자아낸 바 있죠.
정진석 의원이 신임 비서실장으로 정해짐에 따라 2022년 정진석 의원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됐을 때와 동일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국민의힘은 '이준석 사태' 이후 출범한 '주호영 비대위'가 법원 결정에 의해 좌초되는 초유의 상황에서 구인난 끝에 '정진석 비대위'를 탄생시키며 '돌고돌아 윤심당'이라는 비난과 실망에 직면한 바 있습니다. 친윤계가 국민의힘을 장악해야 하긴 해야겠고, 사람은 없고, 급한대로 윤핵관 중 돌려막기 한 상황이었죠.
2022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던 시절, 한미일 군사훈련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일본과의 합동군사훈련은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고 비난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욱일기를 단 일본군이 이 땅에 진주한다고?'라는 글을 올립니다. 이 글에서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조선 왕조는 무능하고 무지했다. 백성의 고혈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짜내다가 망했다'고 적었는데, 이는 조선 패망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 일본의 '식민사관'과 완벽히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논란이 되자 "논평의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하면 안 된다" "그게 왜 식민사관이냐. 내가 일본의 조선 국권침탈을 정당화했느냐. 말도 안 되는 왜곡이고 호도"라고 반박한 것을 비롯해 후에는 만해 한용운의 수필 '반성'을 인용해 재차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나중엔 또 다시 "그건 식민사관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다. 제발 공부들 좀 하시라"고 맞대응했죠.
정진석 의원의 이러한 행동에 과거 그의 부친 정인각(창씨개명 : 오오타니 마사오)이 계룡면장을 지내며 군용물자 조달 및 공출업무, 군사원호업무, 여론환기 및 국방사상보급 선전업무, 국방헌금 및 애국기(비행기) 헌납자금 모집업무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에 이름이 올라 결국 조선총독으로부터 표창을 받은 인물이라는 점, 정진석 의원이 과거 친일청산법 발의에 반대했던 일 등이 재차 언급되며 '그 피가 어디 안간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최대 정치보복은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한 것이다"라고 주장하자,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그의 아들이 박연차로부터 수백만 불의 금품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왜 이명박 대통령 책임이냐"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주장했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가 사자 명예훼손으로 고발, 1심에서 징역 6개월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죠.
그 외에도 조전혁 의원 전교조 명단 무단공개 사건 연루, '세월호 이제 징글징글하다' 등 세월호 비하 발언, '이태원 압사 사고는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 탓' 발언, '좌파 좀비들의 무자비한 문자 폭탄' 발언, 폭우사태 수해지역에서 박수 강요(?) 논란, 가나 인종차별 논란 등 정말 잊을 만 하면 논란을 만들어내는 논란 제조기의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총선에서 패배한 덕분에 드디어 좀 시야에서 사라지려나 싶었는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라니...
정진석 의원의 비서실장 임명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여권은 물론 여권에서까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불통 국정을 전환하라는 국민 명령을 외면한 인사라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정 의원은 친윤 핵심인사로 그동안 국민의힘이 용산 대통령실 거수기로 전락하도록 만든 장본인 중 한 사람"이라고 꼬집고, "윤 대통령은 친윤계 빼고는 쓸 인물이 없느냐"고 지적했구요.
김보협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총선 성적표를 받아들고서 국정운영 실패에 작지 않은 책임이 있는 정 의원을 다시 중책에 기용하는 걸 보니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윤 대통령 주변과 국민의힘에는 그렇게 사람이 없느냐. 민심을 국정운영에 반영하는 데에 도움될 만한 사람을 다시 찾아보라"고 질타했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저는 '당심 100%' 전당대회 규칙을 밀어붙인 사람이 이 정부 실패에 굉장히 큰 책임을 갖고 있다고 본다"며 "그런 사리판단마저도 안 되는, 당심과 민심이 괴리돼 있다는 판단마저도 못한 사람이 비서실장이 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참고로 이준석과 정진석은 '정치 선배의 우려를 개소리로 치부하는 만용은 어디에서 나오나' '1년 내내 흔들어놓고는 무슨 싸가지를 논하나' 등 한바탕 설전을 벌인 사이입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 역시 SNS에 "지난 2년처럼 일방통행을 고집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며 "한때나마 변화를 기대한 내가 미련했다"고 적었습니다. 또한 "우리 당이 무너지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전당대회로 뽑힌 당 대표를 대통령 지시로 내쫓은 것과 당심 100%로 전당대회 규칙을 급조해 대통령 사당으로 만든 것"이라면서 "그 두 가지를 모두 주도한 사람이 바로 정진석"이라고 비판했죠.
이번 정진석 비서실장 임명을 통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 잘 받아봤습니다. 총선 패배에 대한 본인의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밝혔다는 생각이 드네요. 윤석열 정부 집권 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기미가요'(君が代)가 흘렀습니다. 2023년과 2024년 서울 남산에 위치한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일본 천황의 생일 기념 리셉션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은 2년 연속으로 기미가요가 연주됐죠. 그간 '참석자들에게 부담줄까봐' 기미가요를 사용하지 않았던 일본대사관이 왜 윤석열 정부 들어서 "대사관 주최 행사에서 국가 연주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 속에서 이번에 당연한 일로 보여주려고 한국 국가와 함께 기미가요를 틀기로 했다"며 입장을 바꾼 것일까요? 다른 건 몰라도 한일관계는 상당히 가까워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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