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금 마주하게 된 비상 계엄 선포
2024년 12월 3일 22시 25분, 대한민국에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22대 국회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헌정 사상 11번째 계엄선포이자 1987년 민주화 이후 첫 계엄 선포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첫 번째 대국민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에서 술을 마신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국회를 향해 '망국의 원흉'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 '괴물' 등 정상적 판단에 근거한 언행으로 보기 어려운 담화문을 읽어내려 갔고, 밤 10시28분경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하고야 말았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77조 1항은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권한이죠. 특히 77조 3항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계업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는데, 국방부 측에서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3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직접 건의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행 계엄법상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계엄 발령을 건의할 수 있죠.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했습니다.
계엄사령부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박안수 사령관 명의로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을 선포했습니다. 그 첫 번째 내용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것. 또한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 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 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는 내용도 담겼죠.
긴박했던 국회, 완전무장한 계엄군 진입 시도 속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퉁과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 출입문은 일제히 봉쇄됐고, 정부서울청사 출입문도 폐쇄되면서 신원이 확인된 일부 인원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통제됐습니다. 하지만 여야 국회의원들은 계엄 해제 요구를 위해 국회로 빠르게 집결했죠. 계엄 선포가 대통령의 권한이라면 계엄 해제 요구는 국회의 권한. 대한민국 헌법 77조 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계엄 포고령 위반을 들어 국회의원들을 체포·구금할 수 있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은 4일 새벽 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을 처리를 강행했습니다.국회 본청 앞에선 시민들과 야당 당직자 등이 본관 진입을 시도하려는 계엄군과 대치를 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처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0시 56분경 추가로 탄창까지 장착한 계엄군들이 투입됐고, 시민들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였죠. 결국 새벽 1시경 재석 190명, 찬성 190명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됐고, 이렇게 실질적으로 계엄이 무산되자 국회 본관에 진입했던 계엄군은 본관 밖으로 이동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했던 계엄군은 육군 특수전사려부(특전사)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과 수도방위사령부의 정예병력으로 구성됐다고 합니다. 이들은 실탄으로 무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장 영상을 보면 방탄모와 마스크, 방탄조끼 등을 착용하고 있으며, 특수전 사양으로 현대화된 K1 기관단총 등으로 무장한 상태였죠. 일부는 야간투시경까지 소지한 상태로, 사실상 '완전 무장' 상태였습니다.
4일 오전 4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은 두 번째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통해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두 번째 대국민 담화는 애초 생중계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급박하게 일정을 잡으면서 녹화 후 바로 송출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하죠. 그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면서 상황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야 요구 및 탄핵 역풍 직면한 윤석열 대통령, 그 와중에 야비했던 추경호
이렇게 밤 사이 끝난 '윤석열 친위 비상계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정치적 타격을 안겼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윤 대통령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다. 지금 이 순간부터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다"고 밝혔고, 박찬대 민주당 원내 대표는 "계엄을 해제해도 내란죄는 피할 수 없다"며 "윤 대통령은 자리에서 즉시 하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이번 비상계엄은 윤 대통령 친위 세력이 일으킨 쿠데타, 그것도 실패한 쿠데타에 불과하다"며 "해가 뜨면 윤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내란죄와 군사반란죄를 지은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오늘의 이 사태를 봤을 때 탄핵이 아니라 더 강력한 처벌을 해도 모자랄 미치광이 짓을 대통령이라는 윤석열이라는 작자가 벌이고 있다"며 "탄핵을 넘어서 이 정도 되면 윤석열은 즉각 하야해야 되는 국면이다. 하야하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 국면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날 심지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역시 직접 본회의장을 찾은 것을 비롯해 계엄 선포 직후 "위헌·위법적 계엄선포"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 의결에는 친한동훈계 의원 18명이 참석해 전원 찬성투표를 하면서 사실상 윤석열 태통령과의 결별을 선언했죠.
이런 와중에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계엄해제를 막으려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애초 국민의힘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했다가 돌연 당사로 소집 장소를 변경했습니다. 그 시각 국회 안에는 민주당 170여명과 친한계 의원 18명이 있었는데, 심지어 추경호 원내대표는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전화를 해 국회로 들어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려달라고 했죠.
추경호 원내대표가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계엄군에서는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주장에 따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체포·구금을 위한 체포대가 활동했다고 합니다. 수도방위사령부 특임대가 이재명 대표실에 난입했던 것이 CCTV로 확인됐다고 하죠. 다행히도 우원식 국회의장은 추경호 원내대표의 교활한 술수에 걸려들지 않고 잠시 기다린 뒤 계엄해제를 상정하고 의결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경찰 통제 등을 핑계로 들 생각이었겠죠. 그 교활함이 이완용 못지 않습니다.
현재 정치권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표결을 1주일 앞두고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김건희 여사 뿐만 아니라 명태균씨 공천 개입 의혹 등도 포함하고 있어서 윤석열 대통령도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친위 비상계엄으로 인해 친윤계 의원들 역시 윤석열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 왔습니다.
이재명의 책사 김민석은 계엄 선포 계획을 알고 있었다?
한편 지난 8월부터 줄곧 "현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해온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재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8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 총선 당시 국정원이 정치 공작에 대해 대비하고 경고했고 최근 정보사 기밀 유출에 대해서도 정보를 입수해 문제제기를 했다"며 "전반적 종합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죠. 당시만 해도 '거짓선동' '가짜뉴스'라는 여권 중심의 비판이 제기됐었는데요.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9월 말 계엄령 선포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일명 '서울의봄 4법'을 발의합니다. 서울의봄 4법은 △계엄 선포 요건 강화 △국회 사후 동의 등 계엄 유지 요건 강화 △국회의원이 계엄령 선포 중 현행범으로 체포 또는 구금된 경우라도 국회 계엄 해제 의결에 참석할 수 있는 권리 보장 △국회 계엄 해제 권한을 방해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그 손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배상 등의 내용을 골자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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