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쌓여있던 '개헌' 장작에 불을 붙이다
지난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제11차 변론에서 최종변론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은 예상대로 '임기단축 개헌'을 꺼내들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제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먼저 '87 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겠다"며 "현행 헌법상 잔여 임기에 연연해 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제게는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죠.
변론이 종료되자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언론 공지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임기 단축 개헌 추진, 국민통합 그리고 총리에게 국내 문제 권한 대폭 위임 등의 뜻을 밝혔다"며 "대통령의 개헌 의지가 실현돼 우리 정치가 과거의 질곡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열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1987년 개헌 시 헌법 개정 선언 후 4개월이 걸렸다"며 "여야가 열린 마음으로 개헌 작업에 나선다면 빠른 시간 안에 개헌이 가능하다"고 말했죠.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해야 한다는 각계각층의 요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를 지켜보며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죠. 조선일보·케이스탯리서치가 지난달 21~22일 무선 100% 전화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률은 55%,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률은 34%였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31일 무선 100% 전화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KBS·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율은 61%,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율은 30%였죠.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 방안은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통령과 총리가 각각 외치와 내치를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의회 다수당이 행정부 구성권을 가지는 의원내각제 등이 있습니다. 헌정회가 지난해 5월 회원 1180명을 대상으로 바람직한 권력 구조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90%는 이원집정부제를, 10%는 내각제를 선호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죠.
개헌을 위해 움직이는 정치권... 87 체제의 붕괴 가능할까
우원식 국회의장도 전날(26일)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現 국민의힘) 대표 등 여야 정치 원로들을 만난 자리에서 "여야 중재에 나서 개헌 논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고,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당대표들로 구성된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모임'은 내달 5일 서울역에서 '범국민 개헌 촉구 서명운동' 발대식을 열기로 한 것을 비롯해 6일엔 대한민국 헌정회와 민주화추진협의회가 분권형 권력구조에 관한 개헌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할 예정입니다.
국민의힘은 주호영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여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발족했고,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7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비상계엄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헌법재판소와 법원에 맡겨놓더라도 이러한 사태를 부른 우리 정치의 현실을 국민과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윤 대통령이 임기까지 내던지며 스스로 희생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이번 기회에 권력구조(개편)를 포함한 개헌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여권의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안철수 의원 등과 야권의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부겸·이낙연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두관 전 의원 등 차기 대권주자들은 '87체제 청산'을 외치고 있습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행 헌법에 문제가 있다면 차근차근 고쳐야 할 것"이라는 입장이구요.
"지금 개헌 얘기하면 블랙홀 돼..."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이재명 대표
그런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2년 대선 당시 분권형 대통령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최근엔 개헌 논의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19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서는 "지금 개헌을 얘기하면 블랙홀이 된다"고 선을 그으며 "지금 개헌을 말하면 빨간 넥타이 매신 분들(보수 세력)이 좋아하고 헌정 질서 파괴에 대한 책임 추궁이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죠.
이재명 대표는 "(개헌은) 급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대선 국면이 되면 (개헌 논의를) 하는 게 맞지만, 지금은 대선 국면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죠. 다만 대선 국면에서 발표될 개헌 로드맵은 이미 만들어놨다고 자신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후보들이 다 개헌을 약속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면 권력을 내놓을 생각을 하지 않다가 밀려서 여기까지 왔다"고 지적하며 "막연히 '나를 믿고 기다려 달라'라고 할 수는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죠.
이 때문에 개헌 논의에 미온적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입장을 선회하지 않는다면, '개헌 찬성 세력 대 개헌 반대 세력' 간의 대결로 정국이 재편될 수 있다는 해석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 여권의 한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까지 개헌을 언급하니, 개헌 논의에 소극적인 이 대표만 고립되는 모습"이라며 "윤 대통령의 개헌 승부수가 '개헌 찬성 세력 대 반(反)개헌 세력' 대결로 정국을 재설정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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