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중국 베이징 텐안먼 광장에서는 전승절(정식명칭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식 및 열병식이 진행됐습니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을 위해 26개국 정상을 초청했고, 각국 정상들과 귀빈들이 텐안먼 성루에 올라온 뒤인 9시 정각 리창 총리가 전승절 기념식 개막을 선언했죠.
전승 80주년을 상징하는 80발의 예포가 발사된 후인 9시 7분, 시진핑 국가주석은 연설을 통해 "항일 전쟁은 힘들었으나 위대한 전쟁이었으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막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비롯해 "중국은 강권에 굴하지 않고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진보와 반동이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미국을 간접적으로 겨냥하기도 했습니다.
시 주석의 연설이 끝난 후 특수 제작된 대형 오성홍기가 게양됐고, 9시 20분 시 주석이 중국산 훙치 자동차를 타고 텐안먼을 나와 창안제에 도열한 각 부대 사열을 시작했습니다. 시 주석이 탄 차량이 오성홍기와, 공산당 당기, 인민해방군 군기 3종이 있는 부대의 시작 지점에서 잠시 멈춘 뒤 사열을 시작했는데, 시 주석이 "동지들 안녕하십니까" "동지들 수고합니다"라며 인사를 건네자 부대원들은 "주석님 안녕하십니까" "인민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라고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죠.
40여개 제대를 사열한 시 주석은 28분경 반환점을 돌아 성루로 돌아왔고, 부대들은 분열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열병식을 생중계하던 중국중앙TV 아나운서는 "세계의 눈이 동방을 보고 있다"라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죠. 9시 45분 시작된 분열식은 헬기부대가 공중에서 오성홍기, 공산당 당기, 인민해방군를 달고 날고, 80주년을 의미하는 '80' 글자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헬기는 '정의필승' '평화필승' '인민필승' 등의 문구를 한 깃발을 달고 날았고, 지상에서는 도보부대, 장비부대 등 45개 부대가 순서대로 분열을 했죠. 이날 열병식은 훈련기(교련기) 부대 항공기가 이날 행사의 컨셉인 황색 적색 녹색 연기를 분출하면서 10시 25분 경 끝났습니다.
군부대 사열과 분열이 끝난 뒤 톈안먼 광장에서 8만 마리의 평화 비둘기가 날아 오르자 일반 관람객등이 오성홍기 등을 흔들며 환호하고 시 주석 역시 박수를 쳤습니다. 10시 28분 전승절 80주년 기념식이 모두 끝난 것이 선언되자 형형 색색의 풍선 8만개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죠. 이러한 모습은 중국이 '세계 평화를 위한 행사'로 이번 열병식을 홍보하고자 했다는 의도가 분명히 엿보였습니다. 보병부대 분열 도중엔 유엔 평화유지군이 사용하는 하늘색 베레모를 착용한 부대가 등장하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열병식을 관람하던 중국 시민들은 반(反)서방 중심으로서 군사력을 과시하는 자국의 모습에 더 크게 열광하는 듯 했습니다. 열병식 시작 후 줄곧 엄숙히 행사를 바라보던 관람석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를 타격할 수 있는 둥펑(DF)-5C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등장하자 환호성과 박수로 가득 찼습니다. 중국 시민들은 오성홍기를 흔들며 DF-5C를 환영했고, 미사일을 촬영하기 위해 질서정연하던 대열이 흐트러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이날 성루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시 주석의 좌측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 주석의 우측에 자리를 해 세 국가의 긴밀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북중러 최고지도자가 공식 석상에서 한 자리에 모인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있는 일로, 66년 만에 그야말로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됐죠. 10년 전인 전승절 70주년 때는 시 주석의 좌측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성루에 올랐던 점에 비춰볼 때 시대와 상황의 변화를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전승절과 관련해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시 주석이 중국이 적대적인 외세 침략자로부터 자유를 확보하는데 미국이 제공한 막대한 지원과 '피'에 대해 언급할 것인지 여부"라면서 "중국이 승리와 영광을 얻는 과정에서 많은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이 정당하게 기려지고 기억되길 바란다"고 썼습니다. 이어 "시 주석과 중국의 훌륭한 국민들이 멋지고 오래 지속되는 축제를 맞이하기를 바란다"며 중국의 전승절을 축하한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언급하며 "그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해달라. 그들이 미국을 상대로 공모하고 있는 동안"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했죠.
한편 중국이 이번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이재명 대통령의 참석을 타진했으나 한국에서는 이재명 대통령 대신 우원식 국회의장이 참석했습니다. 망루에서 우원식 의장은 시진핑 주석의 오른쪽 제일 끝 쪽에 자리했는데요. 언론들은 우 의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에 관심을 집중했는데, 망루에서의 위치며 기념 촬영 등에서 두 사람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서 만남은 불발됐고, 대신 열병식 이후 열리는 리셉션에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회의장실의 서면브리핑을 통해 두 사람이 열병식 참관 전 악수를 나눈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도 이루어졌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4일 특파원 간담회에서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죠. 출국 전 우원식 의장은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방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소통은 있었다"며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경우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미 2018년 4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만찬 당시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는 구면이죠.
리셉션에서 우원식 의장과 만난 푸틴 대통령은 우 의장에게 "북러 정상회담 기회에 김 총비서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면 좋겠느냐" "남북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우원식 의장은 "남북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 나가기를 희망한다"며 "여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 나가는 일이 지금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하죠. 또한 우 의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베이징 댜오위타오 국빈관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은 "당신의 병사들이 용감하고 영웅적으로 싸웠다"며 "우리는 결코 당신의 군인과 가족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군과 나란히 싸운 북한군을 칭찬해준 것에 감사하다"며 "만약 대통령과 러시아 인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야 할 것이 더 있다면, 나는 그것을 형제 의무로, 우리가 진정으로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는 의무로 생각하고,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할 준비를 할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중국 방문에 딸 김주애를 동반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외신들은 이에 대해 사실상 북한 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후계자로 낙점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주애를 국제무대에 데뷔시킨 것으로 해석했죠. 영국 BBC 방송은 북한 매체들이 김주애를 언급할 때 쓰는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에 주목하기도 했고, 미국 CNN은 "어린 소녀(주애)의 첫 해외 공개 여행은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며 "김 총비서가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열병식에 나란히 섰듯 언젠가 그도 이러한 협력 관계를 잘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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