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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 역사는 진보한다.

자발적한량 2019.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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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에 대해 사실상의 위헌인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습니다. 낙태죄에 대해 합헌 결정이 내려진 2012년 이후 7년 만이며, 낙태죄 조항이 도입된 1953년 이후 66년 만의 결정입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오늘(11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청사 1층 대심판정에서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낸 헌법소원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임신 초기인 1~12주 사이의 낙태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였습니다.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는 합헌과 위헌 의견이 4대 4로 동률을 이뤄 6명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현행 처벌 규정이 유지됐었죠. 당시 헌재는 "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위 조항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보다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합헌 결정 이유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결정에서 헌재는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269조 1항, 낙태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270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조항이 헌법에는 위배되지만 해당 조항의 효력을 상당 기간 유지한다 이런 의미. 즉 여러가지 사유에 의해 개정할 시간을 주는 것이죠. 헌재가 정한 유지 기간은 2020년 12월 31일까지로, 2021년 1월 1일부터는 해당 조항의 효력이 정지되어 낙태죄가 완전히 폐지됩니다. 재관들의 의견을 살펴보면 단순 위헌 의견 3명(이석태, 이은혜, 김기영), 헌법불합치 의견 4명(유남석,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합헌 2명(조용호, 이종석)으로, 위헌 7대 합헌 2였습니다.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배경은 복합적입니다. 이번 결정을 내린 6기 헌법재판관들은 낙태죄에 대해 부정 혹은 신중 입장이 과거 재판부에 비해 늘어난 상태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임명된 신임재판관 6명 중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은애·이영진 재판관 등 3명은 인사청문회 당시 낙태죄에 대해 위헌 혹은 바뀔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바 있죠. 이석태, 김기영 재판관 역시 입장표명은 하지 않았지만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구요. 

 

헌재 내부의 구성 변화 외에도 사회적 분위기 역시 변화했습니다. 미투 운동에서부터 촉발된 여권 신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죠. 당장 저부터도 어디까지나 임신의 조력자인 남성이 낙태와 관련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내가 배불러서 열달동안 수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도 아닌데, 낙태를 하면 안되니 되니 주장을 하기엔 일단 자격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에.. 낙태죄라는 것은 어찌보면 남성이 여성에게 씌워놓은 굴레라고 보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 몸으로 정의해버린 것이죠. 

 

세계적인 추세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낙태의 허용범위를 늘려가고 있는데요. 특히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상당수가 입부의 요청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엄격한 낙태 관련 정책을 펼치는 나라로 분류되어 있죠. 예비 부모가 돈이 없어서 낙태를 하는 등의 사회ㆍ경제적 이유를 허용하지 않는 OECD 국가는 37개국 중 한국과 이스라엘 등 6개국에 불과합니다.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 마저 지난해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 합법화로 돌아섰죠. 많은 국가들이 12주까지는 임부 요청에 의해 낙태를 허용하는 편입니다.

 

 

결국 낙태죄의 핵심은 '태아를 언제부터 사람으로 볼 것이냐'라는 윤리적인 문제입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이라도 태어를 산모의 배 밖으로 꺼낸 시점부터는 살인임을 부정하지 않을텐데요. 좁게는 10주(스위스)부터 넓게는 6개월(영국)부터 태아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임신 극후기나 아무런 예외없이 낙태를 합법화한 국가는 중국, 북한 등 몇 개국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선 진통이 느껴지는 시점부터 산모가 태아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음으로 그 이후부터 낙태죄를 적용해왔죠.

 

 

헌재는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임신 22주를 한도로 제시했습니다.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 등은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과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밝혔죠. 이는 산부인과 학계에서 밝힌, 최선의 의료기술과 의료인력이 뒷받침될 경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한 시기입니다. 하지만 헌재가 낙태 가능 기간을 22주라고 판단한 것은 아니며,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무게를 둘 수 있는 데드라인을 제시한 것이죠.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반응은 역시나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우선 종교계가 깊은 유감을 표명했는데요. 김희중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 "이번 결정은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했다"고 밝힌 것을 비롯해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역시 "낙태 위기에 처한 여성을 보호할 법적 장치를 없애고, 태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여성의 건강을 해치는 생명원칙에 어긋난 판결"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현재 앞에서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며 집회를 열고 있던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연합은 "헌재의 결정은 생명을 보호하는 헌법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판단이며, 어느 것하고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명목으로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죠.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번 결정에 대해 "산모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결정" "현실을 고려했다면 당연한 결론"이라는 의견이 팽배합니다. 여성계 역시 "시대 흐름에 맞는 당연한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역시 헌재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며 집회를 열고 있던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여성을 인구조절의 도구로 사용해온 역사를 종결했다. 낙태죄에 대한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은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죠.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낙태죄 폐지 여부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58.3%,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30.4%였습니다.

 

헌재의 결정을 앞두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헌법소원 결과와 무관하게 형법상 낙태죄를 삭제하는 개정안과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의 허용한계를 대폭 넓힌 개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라고 말한 것을 비롯해 이제 낙태에 대한 것은 국회로 넘어왔습니다. 국회에서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각계 각층의 여론 수렴 등을 거쳐 낙태에 관한 세부적인 법을 만들겠죠. 앞으로 할 일이 무궁무진합니다. 자기결정권, 건강권, 평등권이 보장되는 방식의 모자보건법 개정이 필요할테구요. 정부에서도 그동안 책임을 방기해왔던 낙태에 관련한 의학교육, 약물 임신중지의 안전한 방법에 대한 교육과 보험 적용 부분 등에 대한 세부사항을 정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또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가뜩이나 출산율도 낮은데 낙태가 합법화되면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느니 그런 소리는 집어넣어두셔도 될 것 같습니다. 여성은 국가를 위해 애를 낳는 도구가 아니니까요. 낙태가 합법화되면 무분별한 낙태가 이루어져 생명 윤리가 파괴될 거라구요?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한국의 낙태율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낙태 불법화와 낙태율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들의 낙태율이 한국보다 더 낮죠. 낙태죄 위헌에 대한 헌재의 결정을 환영하며, 앞으로 보다 철저하게 법의 허용 범위 내에서 낙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철저한 법 제정과 행정절차를 기대합니다.

 

 

오늘의 키워드

#낙태 #낙태죄 위헌 #낙태죄 합헌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낙태 허용법위 #형법269조 #형법 27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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