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밟고 있는 땅/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삼풍백화점 붕괴 생존자의 글: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한다

자발적한량 2019.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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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연히 페북에서 이런 글을 봤다. 지속되는 국가 재난 중 어째서 세월호만 유난이냐는 목소리였다. 자칭 우파 여신이라는 분의 글이었다.

이 글을 보고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한참을 울었다. 사람들 참 잔인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삼풍백화점 사고 생존자니까 삼풍백화점 사고와 세월호 사고는 어떻게 다른지, 어째서 세월호 사고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지 말이다. 내가 직접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삼풍백화점 사고는 사고 직후 진상 규명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참담하고 비통한 얼굴로 머리를 조아렸으며, 피해 대책 본부가 빠르게 구성돼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피해 보상을 약속했다.

당시 조순 서울시장은 내가 입원해 있던 역삼동의 작은 개인 병원까지 찾아와 위로 했으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뉴스에서는 사고의 책임자들이 줄줄이 포승줄에 묶여 구치소로 수감되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언론들은 저마다 삼풍백화점 사고의 붕괴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 대책에 관한 심층 보도를 성실히 해 주었다. 사고 관련 피해 보상금도 정부의 약속대로, 사고 후 일 년쯤 지나자 바로 입금 됐다. 덕분에 당시에 나는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완벽하게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벌어진 세월호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어찌 된 일인지 사고와 관련된 진상 조사는 고사하고 정부와 언론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 조작, 축소시키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제대로 된 관련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삼풍백화점 때는 부실 건물 인허가 내준 공무원들도 싹 다 처벌받았다), 한참 뒤에나 어디서 뼈다귀 같은 것을 찾아와서는 '옛다 이게 세월호 선박주 유병언의 유골이다. 됐냐? 그러니 이제 그만 하자'는 투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자, 기자 회견장에 등 떠밀려 나온 것 같은 얼굴의 503은 눈물이 흐르는 모양새를 클로즈업 해 가며, 방송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 불쌍하지 않아? 나한테 무얼 더 원해, 이제 그만해.'


당시 언론들은 삼풍백화점 자리는 영구적으로 재건축을 불허하고 희생자 추모 공원을 세우자고 주장했다. 그랬던 언론들이 어쩐 일인지 세월호 사고 때는 경기가 어려우니 어서 잊고 생업으로 돌아가자고 여론몰이를 했다. 어디 그뿐인가. 어버이 연합을 비롯한 일부 보수단체에서는 광화문에 나앉은 세월호 사고 유족들에게 아이들의 죽음을 빌미로 자식 장사를 한다고도 했다.

이쯤에서 잠깐. 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이런 종류의 불행과 맞바꿀 만한 보상금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생각보다 돈이 주는 위로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당시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그 돈이 이후의 삶에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일을 피하고 그 돈을 안 받을 수 있다면, 아니 내가 받은 보상금의 열 배를 주고라도 그 일을 피할 수만 있다면 나는 열 번이고 천 번이고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당신들은 모른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런 사건 사고가 개인의 서사를 어떻게 비틀어 놓는지 당신들은 정말 모른다. 사고 이후 나는 여태 불안 장애로 신경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번번이 미수에 그쳤지만 그간 공식적으로 세 번이나 자살 기도를 했다. 한순간 모든 것이 눈앞에서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을 본 후로 세상에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됐고, 언제나 죽음은 생의 불안을 잠재울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그깟 돈 얼마가 삶의 이유가 되어 줄 수 있을까. 글쎄 통장에 얼마나 있으면 그런 마음이 생길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삼풍백화점 사고 때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일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말한다.

세월호는 기억 되어야 한다고.
진실은 커녕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으니
절대로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고. 영원히 잊지말자고.


오히려 당신들에게 되묻고 싶다. 어째서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되는 거냐고. 정권을 교체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알고 싶은 것이 뭐가 잘못된 거냐고. 가해자 중 아무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진실을 알기 위한 이 일을 그만둬야 하냐고 따져 묻고 싶다.

단지 당신들 보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날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가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걸 대체 왜 참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또 묻고 싶다.

그러니까 제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거든 차라리 침묵하자. 아니지, 자식의 목숨을 그 알량한 보상금 몇 푼과 맞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면 떠들자. 그런 사람이라면 떠들어도 된다. 그도 아니라면 제발 부탁인데 그 입 닫자.


그것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예의다.

 

오늘의 키워드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 #삼풍백화점 피해자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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