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초복이었습니다. 옛날과는 다르게 에어컨 등 다양한 현대 문명에 의해 더위가 컨트롤되고 있지만, 여전히 복날이면 보양식을 먹는 것이 관례처럼 인식되죠. 여러분은 뭘 드셨나요? 저는 오랜만에 삼계탕을 먹었습니다. 인기있는 복달임 음식으로는 삼계탕, 닭백숙, 오리백숙, 해신탕, 염소탕, 민어, 장어, 추어탕,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보신탕이 있죠.
보신탕,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개고기는 오래 전부터 즐겨먹던 음식이었습니다. 소나 돼지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평민들에게는 훌륭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며, 조선 정조 역시 보신탕을 즐겨먹었다고 하죠. 사실 개고기가 딱히 '보신'에 특출한 효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당시엔 마땅히 섭취할 육류가 없었기 때문에 개고기, 닭고기 외엔 크게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마야도 개고기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심지어는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가장 많이 비판하는 프랑스도 1910년대에 찍힌 개고기집 사진이 있습니다. 애완동물의 개념이 없었던 과거에는, 농사를 돕는 소, 쥐를 잡는 고양이, 알을 낳는 닭과는 달리 집을 지키는 것 외엔 딱히 역할이 없었던 개가 가장 만만했던 것이죠. 하지만 목양이나 썰매를 끄는 등 특수한 목적으로 개를 기르는 곳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일이 적었습니다. 다시 말해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하지만 개는 소, 닭, 양, 오리, 말, 염소 등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과 유난히 정서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개는 인간에게 의존하는 타고난 본능이 있으며, 선사 시대 이래 인류의 오랜 친구였죠. 게다가 개는 현대 시대에 이르러 이른바 '반려동물'로서의 지위를 가장 먼저 획득하여 애견인들에게는 그야말로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물론 비애견인에게는 개 역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동물 중 하나일 뿐이지만요.
저는 평생을 살면서 대략 4회 정도 개고기를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제게 뭔가 다가가기 어려웠던 육식의 종류를 들어보면 곱창, 개고기, 염소탕 정도였는데요. 아빠를 따라 보신탕집에 갔는데, 그간 가봤던 갈비탕집이나 일반 삼겹살집, 순대국집에 비해 뭔가 후줄근하고 허름했던 인상을 받았었죠. 게다가 전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데, 뭔가 고기를 먹을 줄 알고 갔더니 보신탕 안에 들어있는 엄청난 양의 야채에 딱히 좋은 인상은 아녔습니다. 하지만 고기 자체의 맛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가 보신탕집 아들이어서 반 회식을 두 차례 정도 그 친구네 가게로 갔었구요. 대학생 때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신탕을 먹고 그 이후로는 보신탕을 먹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우선 첫 번째로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강아지를 기르게 된 점입니다. 딸처럼 제 곁에서 16년을 살았고 18살의 나이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는데, 제 강아지에게 괜한 미안함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굳이 보신탕을 찾아먹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장해가면서 음식에 대한 관심이 유독 컸던 저는 이런저런 음식들을 접해나갔는데, 제 입장에선 굳이 싸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맛에 어마어마한 매력을 느끼지도 않았고, 물에 빠진 고기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개고기 외에도 먹고 싶은 음식들이 넘쳤던 것이죠. 굳이 비교를 하자면, 두리안이 '과일의 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긴 하지만 구하기도 쉽지 않고 냄새도 나는데다가 저의 최애 과일은 복숭아, 자두, 딸기인데 애써 두리안을 노력 끝에 먹을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개 식용 문화 반대에 앞장선 것도 아닙니다. 20대 때까진 개신교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나 이슬람교를 비난하고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은 것처럼 개고기를 먹고 말고에 대한 문제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비위생적이고 처참한 수준의 개 농장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는 분노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농장주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을 했고, 더 나아가서는 개 식용 산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국가의 책임이라고 여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동물을 도축할 때에는 축산물위생관리법이 지정한 방식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가 해당 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1975년 개를 가축에 포함시켰다가 국내외 비난이 잇따르자 1978년 다시 제외시켰죠. 또한 서울시는 1984년 고시를 통해 개고기 판매를 금지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대대적으로 단속을 했지만, 개고기 문화를 근절시키진 못했습니다. 개고기는 '사철탕' '영양탕' 등으로 이름이 다양해졌죠. 딱 맞아떨어지는 예는 아닙니다만, 성매매특별법 발효 후 음지로 숨어들고 방식도 다양해진 성매매처럼요.
문제는 법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개 농장마자 도축 방식이 제각각이고, 사전검사 없이 유통되는 터라 위생에 대한 어떠한 검증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소, 돼지, 닭처럼 많은 수의 국민들이 개고기를 즐겨먹는다면 법의 범주에 포함시켜 체계적으로 관리를 했겠지만, 소비량이 그 정도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방치를 해버린 것이죠. 하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개고기 가공, 유통, 조리는 엄연히 불법입니다. 식품위생법은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고시를 통해 식용 가능한 식품 원료를 명시하고 있는데, 개고기는 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죠. 위반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개고기 논쟁은 양측이 평행을 달리며 끊임없이 소모전만 이어져 왔습니다만, 올해는 유난히 사회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바로 지난 4월 영부인인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은 금지돼야 한다"고 발언을 한 것이 시작이었죠. 국회와 서울시의회에서 관련 법안 및 조례 발의로 정치권에서도 화두가 됐구요.
하지만 어제 초복 풍경을 담은 르포를 보니 서울 종로구 신진시장에 있는 보신탕집들의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호황이었다고 합니다. 중장년층부터 노년층 남성들이 주를 이룬 손님들로 가게가 북적였다고 하는데요. 이곳의 보신탕집들은 초복을 위해 전날부터 큰 가마솥을 통해 다량의 개고기를 준비했다고 하죠. 밖에는 삶아둔 개고기를 놓아둔 곳도 있었는데, 저도 사실 이렇게 통째로 삶아진 상태의 개고기는 사진조차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김지향 국민의힘 시의원 측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남아있는 개고기 판매점은 총 229곳이라고 합니다. 김지향 의원은 지난 5월 말 원산지·유통처 등이 불명확한 개고기의 비위생적인 실태를 서울시가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개고기를 취급하는 업체에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고양이 식용 금지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는데요.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국회가 상위법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심사 보류했습니다.
이번에는 국민들의 인식을 살펴볼까요? 지난 1월 사단법인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가 발표한 '2022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94.2%가 지난 1년간 개고기를 먹은 적이 없으며, 88.6%는 향후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또한 개를 식용으로 사육·도살·판매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는 매우 그렇다(42.0%), 그렇다(30.8%) 등 동의하는 비율이 72.8%로 집계되었구요.
보신탕 업계에서는 그간 강력한 존속을 유지하던 것에 비해 약간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한 업주는 "우리 조상들이 먹어온 고유의 음식을 두고 갑자기 이렇게까지 막아설 필요가 있나 싶다. 어차피 먹을 사람은 다 먹는다"면서도 "가끔 가게에 동물 단체가 찾아와 판매하지 말라는 등의 설득을 하는데, 어차피 지금 규제가 심하고 판매할 고기도 부족하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아예 안 먹다 보니, 이대로 가면 몇 년 안에 보신탕 가게들이 전부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즉, 어짜피 젊은 층들이 찾지 않는 추세이다보니, 현재 보신탕을 즐기는 중장년층 및 노년층과 함께 보신탕집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는 거죠.
저는 개고기 찬반 논란의 중심에는 행정력의 모호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개농장은 합법이면서 식용 자체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고, 개고기 판매는 불법인 현재 상황. 게다가 그렇다고 보신탕집들의 영업에 대해 법에 따라 적극적으로 단속하지도 않죠. 그야말로 개고기 산업은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개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조성되어 7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대구 칠성 개시장입니다. 성남 모란시장, 부산 구포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시장이었는데, 두 시장은 각각 2018년과 2019년 문을 닫았죠. 칠성 개시장 역시 가장 번성했을 때는 30여개 점포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건강원과 보신탕집 등 14개 점포만 영업 중이라고 합니다. 현재 대구시는 2025년까지 주상복합건물을 건립하는 칠성시장 재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재개발에 포함되는 개시장 업소가 14곳 중 3곳에 불과하고, 나머지 업소들은 문을 닫을 의사가 없어 시장이 없어질 지는 미지수입니다.
개 식용 문제와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공급을 없애면 자연스럽게 개 식용 문화를 근절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어짜피 손님도 많이 줄어들어 정부나 시가 적절한 보상만 해 주면 손 놓겠다"는 업자들도 있는 반면, 위에서 언급했듯 수요가 사라질 때까진 영업을 계속 하겠다는 분위기가 대다수죠. '개·고양이 식용 금지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한 김지향 시의원 측에서는 "(보신탕집 업주들 입장에서) 자기 업종을 바꾸라고 하면 난처할 것을 안다. 그래서 (남은 보신탕집 가게들을 대상으로) 다른 '보신 음식'으로 특화한 식당으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수십 년간 보신탕에 대한 노하우로 생계를 유지해 온 상인들에게 그야말로 백종원이 나서서 대대적인 업종 변경 교육을 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 번째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원리원칙대로 법에 따라 행정 집행을 하는 것이죠. 분명 관련 법상 개고기의 가공, 유통, 조리는 불법입니다. 그러니까 엄정하게 위반 사항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것이죠. 보수의 가치는 자유주의, 반공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잖아요? 법에 따라 칼같이 처리하면 될 일입니다. 철거민들이나 노조의 파업 및 집회 등에 대해 강공을 하며 물대포를 쏘듯 말이죠. 설문조사에서 보여지듯 국민들의 인식 역시 개고기 식용 반대 쪽으로 이미 기울어진 상황이라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현저히 적어보이구요.
두 번째는 동물보호단체 및 개고기 금지론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개를 축산물위생관리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 개고기 산업을 법의 통제 하에 관리하는 것입니다. 개고기 섭취 자체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대론자들의 입장에서 축산물위생관리법은 적용 대상 동물을 식품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반대하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해당 산업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법의 테두리에 들어오게 해서 법의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취지에서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김건희 여사가 절대 찬성할 리가 없기 때문에 여당인 국민의힘 및 윤석열 대통령이 이 방법을 채택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어떻게 감히.
세 번째는 정부가 나서 직접 이들의 업종 변경을 통해 개고기 식용의 종식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반농담조로 언급하긴 했지만, 개 식용 종식 차원에서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를 섭외해서 현재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업자들이 변경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죠. 이러한 중재안에도 따르지 않을 경우 그 때가서 '법대로' 처분을 해도 늦지 않구요.
분명한 점은, 강경책이든 온건책이든 간에 법이 존재하는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법의 사각지대를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2023년에 법의 사각지대가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이를 방관하는 것은 그야말로 '직무유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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