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민간군사기업(용병 집단) 바그너 그룹의 수장이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끝내 사망했습니다. 러시아 연방항공운송국은 현지시각으로 23일 저녁 제트기 엠브라에르 레가시 1대가 모스크바 북서쪽으로 170km 가량 떨어진 중앙 연방관구 트레비 주에서 추락해 탑승자 10명이 모두 사망했는데, 탑승자 중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드미트리 우트킨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러시아 연방항공운송국은 사고 직후 곧바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 제트기는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중이었다고 하며,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가 사망자 7명의 주검을 수습했다고 하는데요. 러시아 당국에 따르면 프리고진의 사망 원인은 탑승한 비행기 자체가 폭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비행기의 추락 장면이 촬영된 영상이 오신트에 올라왔는데, 추락하는 제트기는 좌측 날개가 없이 실속 상태로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죠.
곧이어 바그너 그룹 공식 텔레그램 계정인 그레이존에는 "바그너 그룹의 수장이며 러시아의 영웅, 조국의 진정한 애국자, 에브게니 프리고진의 러시아의 반역자들 행동으로 숨졌다"며 프리고진의 죽음을 공식 인정함과 동시에 "하지만 비록 지옥에서라도 그는 최고일 것이다. 러시아에 영광을"이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러시아 공군 관계자인 파이터봄버가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에 바그너 그룹의 반란 당시 바그너에 의해 격추된 IL-22 항공통제기 사진과 함께 "우리는 기억한다" "두 달 동안 하루도 잊은 날이 없었다"라는 글귀를 적어 이번 프리고진의 죽음에 러시아군이 연관되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기도 하죠.
에브게니 프리고진. 푸틴과 같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친부 및 계부 모두 유대인 혈통입니다. 요식업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다 2001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과 함께 자신의 레스토랑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과 만난 이후 프리고진은 2003년부터 푸틴의 생일 및 크렘린궁 연회 음식의 케이터링을 맡으며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2010년부턴 러시아의 학교 및 군대 급식 공급 계약까지 따냈고, 이를 위한 식품 공장의 개장식에 푸틴이 직접 방문할 정도로 그와 가까워졌죠.
이후 프리고진은 2013년 인터넷 연구소라는 페이크 계정을 통한 여론 조적 회사를 운영하여 2016년 미국 대선 여론작업에 개입하는 등 정치적 활동을 시작했고, 2014년 러시아 특수부대 출신을 주축으로 구성된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해 크림반도 강제 병합, 시리아-리비아 내전, 수단, 말리, 콩고민주공화국,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 등에서의 내전 및 분쟁에 개입해왔습니다. 바그너 그룹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사실상 푸틴과 러시아 당국이 하고싶지만 외교적 책임 때문에 공개적으로 나설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었던 거죠. 게다가 바그너 그룹은 가는 곳마다 학살과 고문 등 잔혹 행위를 끊임없이 저질러 왔구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진영의 선봉에 서서 전쟁에 임해왔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아예 대놓고 교도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바그너 그룹에서 6개월간 복무하면 석방해주겠다고 모집을 할 정도였는데요. 전쟁이 장기화되고 러시아군의 패전이 반복되면서 러시아군의 체계가 무너짐과 동시에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군의 주력부대를 이끄는 수준으로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의 영향력은 커져갔습니다. 한낱 용병 그룹이었던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의 강력한 군벌로 성장했죠.
바그너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은 "우리가 내부 관료주의와 부패를 정복하면 우크라이나와 나토를 물리칠 수 있다"고 러시아군 수뇌부를 공개 비판했고, CNN이 '프리고진이 겨냥한 타겟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라고 분석한 것을 비롯해 뉴욕타임즈가 '프리고진이 국방장관이 되려고 한다'라고 보도했을 정도. 하지만 푸틴은 계속해 러시아 군과 크렘린 내각보다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을 앞세우는 전시행정을 보입니다.
하지만 프리고진의 언론 노출이 잦아지고 급기야 그가 정치적 야망을 대외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자 2023년 러시아 정부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2023년 2월, 프리고진이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공개 비판한지 2주 뒤, 크렘린궁은 게라시모프를 오히려 우크라이나 전쟁 총사령관으로 임명함과 동시에 프리고진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전임 세륵이 수로비킨 총사령관을 부사령관으로 강등시키는 인사 조치를 감행하죠. 이러한 군 지휘부의 변동은 푸틴의 승인 없이는 불가한 것으로, 그간 프리고진과 대립각을 세워온 러시아 군 지도부 및 러시아 연방 국방부는 물론 크렘린궁까지 프리고진의 영향력을 거세하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라 이러한 변화에 모두들 주목했죠. 외신들은 프리고진이 러시아 내부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앞다퉈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6월 24일,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은 쿠데타를 감행하기에 이릅니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연방 국방부가 바그너 그룹의 용병 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해 2,000명의 용병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면서 "쿠데타가 아니라 정의의 행진"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죠. 24일 새벽 러시아 로스토프 주에 진입해 지역 군사령부를 점령한 바그너 그룹은 하루 만에 1,000km 가량을 진격해 모스크바에서 불과 300km 떨어진 리페츠크 주까지 다다랐고, 러시아 당국은 프리고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반역죄 혐의로 그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립니다.
프리고진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오지 않으면 로스토프나도누를 봉쇄하고 모스크바로 진격할 것"이라고 예고하며 긴장감이 극에 달한 이 쿠데타는 갑작스럽게 나선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중재로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망명하는 조건으로 군을 철수하며 러시아 정부로부터 형사적 면책을 받고 허무하게 종료됩니다. 이틀에 걸친 팽팽한 긴장감 치고는 무척 싱거운 결말이었죠.
이후 전문가들은 프리고진이 앞으로 암살 위협에 시달릴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당장 푸틴이 프리고진을 살해하거나 감옥에 가둘 수도 있지만, 러시아 국민은 물론이고 러시아군조차도 바그너 그룹을 막기는 커녕 그들에게 길을 내어줄 정도로 프리고진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그를 곧바로 숙청했다간 순교자 이미지가 씌워지며 가뜩이나 쿠데타로 리더십과 이미지가 심각한 타격을 입은 푸틴의 입지가 더욱 흔들릴 것이므로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릴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했죠. 게다가 프리고진보다 더 큰 적은 바로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었으니.
이후 러시아는 프리고진을 상대로 사업체 몰수 작업에 들어갔고, 반란 5일 뒤 프리고진과 푸틴이 3시간 가량 면담을 했으며, 오랫동안 암투병 중이었던 사실이 알려지는 등 잔잔히 프리고진의 생존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7월 6일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는 사실을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밝힌 데 이어 7월 20일에는 반란 이후 처음으로 영상에 등장했고,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에 참석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죠.
8월 21일 프리고진은 아프리카로 추정되는 배경으로 위장복 차림과 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기온은 영상 50도로 모든 것이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이다. 바그너 민간용병기업은 모든 대륙에서 러시아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고 아프리카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고 말하는 영상을 바그너그룹 텔레그램 채널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진짜 실력자들을 모집하고 있으며 이미 정해진 임무와 우리가 처리하기로 약속한 일들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며 용병 모집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죠. 하지만 이것이 프리고진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되었습니다.
추락한 제트기에는 프리고진을 포함해 드미트리 우트킨, 발레리 체칼로프 등 바그너 그룹의 지휘관 7명이 탑승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프리고진의 사망 소식을 접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에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한 말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난 '내가 (프리고진이라면) 무엇을 탈지 조심할 것'이며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난 놀랍지 않다"라고 반응했다고 하는데요. 일 1,000km 진군이라는 전쟁사에 유례 없는 대기록을 남긴 그는 이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리고진! 지옥에서는 당신이 푸틴보다 선배입니다. 현생의 한은 거기서 푸세요.
'일상생활 > 썰을 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의 한국 '괴뢰' 표기, 존중 찾아볼 수 없는 세계 최빈국의 무례함 (0) | 2023.10.04 |
---|---|
김정은 장녀 김주애 언론 노출 급격히 증가, 북한에 여왕의 시대 도래하나? (0) | 2023.09.12 |
이탈리아산 푸른 꽃게 어서 오고~ 한국으로 오는 이탈리아 골칫거리 '푸른 꽃게' (0) | 2023.09.11 |
디스패치의 김희어라 저격 학폭 논란, 학폭 증언 대신 미담만 연달 (0) | 2023.09.09 |
일본인들과 인스타그램에서 키배 뜬 썰, 역사 공부가 이래서 중요합니다 (1) | 2023.08.21 |
블랙핑크 지수·배우 안보현 열애 인정, 블랙핑크 사상 최초의 열애 인정에 주목한 외신들 (0) | 2023.08.04 |
갤럭시Z 플립 5·폴드5 공개한 '갤럭시 언팩 2023', 국내에서 언팩 행사 연 삼성의 기민함 (0) | 2023.07.28 |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을 지켜보며... 무너진 교권, 내가 교직의 꿈을 포기한 이유 (1) | 2023.07.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