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썰을 풀다

일본인들과 인스타그램에서 키배 뜬 썰, 역사 공부가 이래서 중요합니다

자발적한량 2023.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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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개인적으로 일본을 참 좋아합니다. 어려서부터 히데(Hide), 맥시멈더호르몬(Maximum the Hormone), 페즈(Pe'z), 카시오페아(Casiopea), 티스퀘어(T-SQUARE) 등 J-Rock 기반의 일본음악을 좋아하기도 했고, 일본 망가에 빠져 살진 않았습니다만, 드래곤볼, 소년탐정 김전일, 슬램덩크, 미스터 초밥왕, 꼭두각시 서커스 등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이즈(I"s)의 이오리가 반쯤은 첫사랑인 점은 함정... 스튜디오 지브리의 거의 모든 작품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토토로, 벼랑 위의 포뇨,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바람이 분다 등등)을 봤고, 엘펜리트(Elfen Lied)는 제 인생띵작애니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모든 음악을 담당한 히사이시 조(久石譲. Joe Hisaishi)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 중 한 명입니다. 가깝고 싼 걸 떠나서, 해외여행지 중 일본을 여행할 때 가장 편안하고 돈 쓸 맛 난다고 생각해 일본을 가장 많이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아, 제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신 대학교 교수님 역시 일본인이시군요. 제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두 사람 중 한 분이십니다.

 

일빠도 아니면서 장황하게 제가 좋아하는 일본에 대해 설명을 한 이유는, 그만큼 일본에 대해 호감을 많이 갖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만약 국제결혼을 한다면 일본인과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제게 일본은 무척이나 호감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국가 역시 일본입니다. 이유는? 당연스럽게도 과거사죠. 사실 이걸 과거사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독일과는 다르게 일본은 과거사를 스스로 현재까지 문제가 되게끔 끌고 오고 있으니까요. 과거사를 깨끗하게 매듭짓지 못해서 8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게끔 자초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독일과 일본의 차이점이구요.

 

전 과거 수 많은 한국인들이 도쿄로 여행을 가면서도 마치 금단의 장소마냥 야스쿠니 신사 방문을 꺼려하던 시절, 제 발로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가 경내에 있는 일본의 전쟁기념관이라 할 수 있는 유슈칸(遊就館)을 입장하면서까지 샅샅이 둘러보고 그 후기를 블로그에 포스팅한 바 있습니다. 제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던 목적은, 제가 쓴 글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이 반성감은 찾아볼 수 없이 과거를 찬란하게 생각하는 일본의 속내(다테마에, 建前)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 음악을 전공했지만, 학생 때는 역사 선생님을 꿈꿨을 정도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 터라, 특히 한국과 일본 간의 역사에 대해서는 정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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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6일, 인스타그램에서 유난히 많이 눈에 띄이는 영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8월 6일은 바로 1945년 히로시마에 미국이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를 투하한 날인데요. 이 영상은 '맨발의 겐(はだしの ゲン)'이라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으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순간의 참상을 보여주는 부분이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약간 잔인할 수도 있으니 미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일본 네티즌들은 해당 영상을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바이럴하면서 일본이 이렇게 참담한 원폭 피해를 입었다고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정말 나쁘다' '우리 일본은 평화를 사랑한다. 이러한 비극이 일본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발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등 정말 눈을 뜨고는 참기 힘들 정도로 피해자 코스프레가 난무했죠.

 

이러한 상황은 일본 정부가 야비하게 만들어 놓은 결과물입니다. 1990년대, 동경대 교육학 교수였던 후지오카 노부카츠는 패전 후 일본의 역사관이 일본에 상륙한 점령군 미국으로부터 강요당한 역사관과 소련(소비에트 연방)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세력이 내걸었던 역사관의 혼합물로써, 이는 일본 국민의 자유로운 주체성에 근거한 역사관이 아니라고 비판했죠. 그러면서 이러한 역사관이 일본 국민들에게 전쟁의 가해자로서의 인식을 심어주는 이른바 '자학사관'이라고 규정짓는 한편 일본 국민들의 자긍심을 위해 일본사의 교육과정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이것을 그는 자유주의사관 혹은 수정주의사관이라고 부릅니다.

 

마침 1990년대는 일본의 우익 성향의 정당인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무너지고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총리로 하는 연립정권이 발족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호소카와는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이 과거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한 것에 대해 인정하죠. 그러자 자민당은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 전 관동군 총 참모장 및 조선군 사령관으로 역시 A급 전범이었던 이타가키 세이시로의 아들 이타가키 마사시 등이 참여한 역사검토위원회를 만들죠. 그리곤 현행 역사교과서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역사교과서 전쟁'을 개시한다고 선언합니다. 정치권의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후지오카 교수 역시 '자유주의사관연구회'를 조직하죠. 이들은 정부에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술을 중학교 교과서에서 삭제하라는 긴급호소문을 발표하는 등 활동을 벌여 나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997년 후지오카 교수는 황국사관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 역사'라는 책을 써 논란의 중심에 있던 전기통신대학 니시오 간지 교수가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출범시킵니다. 회장을 맡은 니시오 간지는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우리 일본인은 전후에 미국과 소련의 틈새에서 역사를 박탈당해왔다. 그 아픔을 한국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상상한 적이 있을까?' '우리야말로 피해자다. 어째서 동정해주지 않는가?'라고 호소할 정도로, 우리가 봤을 땐 정신병 수준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던 인물. 그리고 일본 유수의 기업들이 전폭적으로 새역모에 재정 지원을 했죠. 새역모는 그간 알려져 있던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모두 일본의 정신적 해체를 도모하려는 안팎의 반일세력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준비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들었고, 새역모가 만든 역사교과서는 2001년 4월 검정을 통과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본인들은 진실과는 동떨어진 역사를 배우게 됐고, 그런 역사를 배운 그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저러한 모습들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저럴 수 밖에요.

 

우리가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 하고,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올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현재의 일본 국민들처럼 진실을 모른채 되려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괴물이 되어 버립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저런 일본인들의 생때보다도 못한 말에 반박조차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저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영상인 '맨발의 겐'이 사실은 일본의 피해를 부각시키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전쟁과 원폭의 참상, 그리고 덴노(천황)과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막연히 원폭 투하 장면의 이펙트만을 생각하고 이용하고 있죠. '맨발의 겐'이 소위 '극우세력들이 싫어하는 좌익 만화'라고 불린다는 점이, 이 애니메이션과 원작 만화가 가진 메시지의 방향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전체의 내용을 알게 된다면, 자신들의 헛발질에 집에 쳐박혀서 코타츠를 뻥뻥 차고 싶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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