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용주사에서는 자승 스님이라 불리는 이의 다비식이 엄수됐습니다. 자승은 지난 11월 29일 불이 났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의 칠장사 요사채(스님들이 기거하는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바 있습니다. 현장에서 그의 필적으로 쓰인 유서가 발견되면서 조계종 종단에서는 이를 소신공양으로 인정했죠. 조계종 대변인인 기획실장 우봉 스님은 지난 11월30일 브리핑을 통해 "자승 스님이 종단 안정과 전법도생을 발원하며 소신공양, 자화장으로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밝혔습니다. '자화장'은 장작 더미에 올라가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라 다비를 진행함으로서 부처에게 공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승은 1954년 4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습니다. 1972년 10월 해인사에서 지관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4년 4월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죠. 여기서 계사란 수계를 주는 승려를 말하고, 사미계는 출가했지만 아직 스님이 되지 않은 남성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 구족계는 출가한 비구·비구니가 지켜야할 계율을 말합니다.
그는 1986년 총무원 교무국장을 시작으로 규정국장, 10대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하며 종단의 주요 교역직을 대부분 거치며 종단의 대표적인 사판(행정승)으로 꼽혔습니다. 그리고 2009년 10월 조계종 제33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전체 317표 중 290표라는 역대 최고 지지율로 당선됐으며, 2013년 재선에 성공해 2017년 두 번째 임기를 마쳤죠. 또한 2021년엔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건학위원회의 고문이자 총재가 되어 동국대학교의 실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까지 손에 넣게 됩니다. 조계종 내에서 가장 큰 두 개의 권력이 총무원장과 동국대 이사장인데, 자승은 이를 모두 손에 넣은 사람이 된 것이죠. 자승은 임기 이후에도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의 이사장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또한 봉은사의 회주(최고 지도자로, 행정 책임자인 주지와는 다른 개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사망 이후 전국 주요 본사에 빈소가 설치되었으며, 윤석열 정부는 자승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12월 2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조계사에 마련된 분향소에 찾아와 이를 전달했죠. 그의 사망으로 연말에 예정되어 있던 불교계 행사들은 모두 연기되거나 대폭 규모를 축소해 치러지기로 변경되었습니다. 일례로 12월 6일 예정되어 있던 전국불교합창대회가 2024년 3월 27일로 연기되었죠.
하지만 그의 죽음에 대해 대중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합니다. 우선 '소신공양'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인식부터가 싸늘한데요. 소신공양은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공양하는 것을 말하는데, 《묘법연화경》에서 약왕보살이 향유를 몸에 바르고 일월정명덕불 앞에서 보의를 걸친 뒤 신통력의 염원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 몸을 불살랐던 데서 유래합니다. 경전은 '이것은 참다운 법으로써 여래를 공양하는 길이다. 나라를 다 바치고 처자로 보시하여도 이것이 제일의 보시이다'라고 이를 찬양하죠. 그리고 약왕보살은 후에 다시 화생합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소신공양을 두고 자신을 희생하는 정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지, 실제로 자기 몸을 태우는 분신자살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자살을 금하고 있으며, 석가모니 또한 소신공양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권장한다면 그건 정상적인 종교가 아니겠지요. 어느 종교든 종교나 사회, 국가를 위한 대의명분이 있지 않는 한 자살은 금지되고 있습니다. 원불교의 경우는 아예 믿음을 증명하고자 몸을 다치거나 죽는 일을 금지한다고 명시해두기도 했죠.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태고종 충담스님이 분단된 국토의 통일과 사회의 안녕, 헐벗음과 괴로움이 없어지며 종단이 화합해 불국토가 앞당겨지길 기원하며, 2010년 조계종 문수스님이 4대강 사업 즉각 중지, 부정부패 척결,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며, 2017년 정원스님이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며 스스로 불을 붙여 사망해 '소신공양'의 사례로 언급됩니다만, 과연 이러한 모습들이 '소신공양'이라는 말까지 써가면서 미화할 가치가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베트남의 승려 틱꽝득이나, 중국의 폭압통치에 항거하는 티베트인들의 죽음 정도야 '소신공양'으로 부를 수 있지만.. 글쎄요. 전 아직까지 국내에서 스스로 불을 붙여 가면서 알리고자 한 대의명분이 뭔지에 대해선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승의 경우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의 총무원장까지 지낸 사람이 사찰에 불을 질렀다는 것은 제 상식선에서 이해가 어렵습니다. 방화는 명백한 범죄입니다. 칠장사는 궁예가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유명한, 신라시대인 636년부터 내려온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경내에는 국보인 오불회괘불탱을 비롯해 보물 3점(혜소국사비, 삼불휘괘불탱, 대웅전)이 있죠. 자승이 방화를 저지른 요사채가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은 아니지만, 이렇게 건조한 시기에 자승의 방화는 자칫 칠장사 뿐 아니라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었던 위험천만한 행동입니다. 현행법상 현주건조물방화죄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중범죄입니다.
조계종은 종단 차원에서 그의 죽음을 '소신공양'으로 규정했지만,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가 조계종 스님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신공양'(6.9%)이라는 응답보다 '영웅 만들기 미사여구'(93.1%)라는 부정적인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죠. 이는 지난 1일 오후 12시부터 다음날 오후 1시까지 조계종 소속 승려 4,610명을 대상으로 문자를 보내 실시했고 6%인 276명이 응답했는데, 지금이 집중수행 기간인 동안거중이란 점 등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숫자라고 합니다.
자, 그리고 또 하나의 포인트. 이 설문조사의 두 번째 질문이 바로 '자승스님이 한국불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였는데요. 이 질문에 대해 '종단 안정과 불교 중흥을 위해 노력한 큰 스님'이라는 답변이 6.2%였던 데 비해 '끝없는 정치적 욕망과 명예를 추구한 사람이다'라는 답변이 93.8%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보였습니다. 즉, 자승이 정치승려였다는 것이죠.
그동안 자승은 이명박, 윤석열 대통령을 공개지지해왔는데요. 뭐 종교인 역시 특정 정치인을 지지할 자유야 물론 있겠지만, 사실상 선거운동원으로서의 활동까지 자처해가면서 정치적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이 비판의 소지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2월 대선을 앞두고 대다수 승려들이 반대를 했음에도 코로나 시국에 승려대회를 강행해 '종교의 정치개입'이라는 오명을 얻었고, 총무원장 선거 당시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져 조계종 노조원들이 이를 비판하자 자승의 제자들이 이들을 폭행하는 사건까지 일어나 조계종 혁신파에서는 자승을 두고 '조계종의 흑막'이라고 표현했죠.
자승은 총무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조계종의 상왕'이라 불리며 행보를 비판받았는데, 심지어 머리를 깎지 않고 장발을 해 조계종 승려들에게 고발당했을 정도였습니다. 1,700년 불교사에 처음있는 일이라는 기사 제목을 본 것 같네요. 이번에 자승이 남긴 유서에는 '탄묵, 탄무, 탄원, 향림. 각자 2억(원)씩 출연해서 토굴을 복원해주도록. (20)25년까지 꼭 복원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일각에서는 '승려들이 돈도 많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조용기, 김기동, 김삼환 목사를 비롯해 보편적 상식을 벗어나 부를 축적하거나 개신교의 목사들과 별반 다를게 없죠.
윤석열 정부에서 자승에게 '한국불교 안정과 화합으로 전통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이웃 종교와의 교류 협력과 사회 통합에 이바지했다'며 국민훈장 중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하면서 거의 정치승려 논란에 확인사살을 해준 듯한 모양새가 되었는데요. 자승의 제자들은 얼른 자승이 저지른 방화 복구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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