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수사 중인 피의자를 해외로 도피시키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해병대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로 오늘(10일) 오후 호주로 출국했습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주호주대사 임명장을 받은 바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늘 오후 5시30분경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윤석열 대통령실의 해병대 수사외압 범인도피 범죄은폐 저지 긴급행동'을 열었습니다. 홍익표 원내대표를 비롯해 박찬대·박주민·정일영·오기형·홍기원 의원 등이 참석했는데, 이종섭 전 장관의 출국을 막으려는 취지였죠. 홍 원내대표는 "예상과 다르게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섭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해서 해외로 도피시키겠다는 것은 강행하겠다고 한다"며 "이는 명백한 수사 방해고 주요 피의자를 국가기관이 공권력 동원해서 해외로 도피시키는 사건"이라고 긴급행동의 취지를 밝혔습니다.
홍 원내대표는 "이 전 장관은 오늘 해외로 출국해선 안 된다"며 "공수처가 이 전 장관을 불러 4시간 조사한 것은 해외 도피를 방조하기 위한 절차적 과정에 불가했다"고 주장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공천받은 자들의 공천 취소하고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을 철회하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들은 오후 7시 15분까지 출국장 앞에서 긴급행동을 이어갔는데요.
알고보니 이종섭 전 장관은 민주당 의원과 취재진의 눈을 피해 탑승 수속을 마친 뒤 호주 브리즈번으로 향하는 KE407항공편(오후 7시45분 출발)에 탑승했습니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 외에도 많은 취재진들 역시 오후 내내 이종섭 전 장관을 출국장에서 기다렸었는데요. 보통 출발시간 한두 시간 전에 탑승구가 있는 보안구역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이종섭 전 장관은 취재진이 도착하기 전에 훨씬 앞서 보안구역에 이미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MBC가 아예 비행기 티켓을 끊고 보안구역 내부로 들어가서 이종섭 전 장관을 만나는데 성공했습니다. 항공기 탑승구로 가는 동안 아주 잠시 마주쳤기 때문에 긴 대화를 할 순 없었지만, 이 전 장관은 MBC 취재진이 나타나자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말하면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는데요. 조사 중인 상황에서 호주로 출국하는 것에 대해선 "그건 다 얘기된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러한 소식을 접한 뒤 기자들과 만나 "2시간 전부터 기다린 우리를 피해 어떻게 이 전 장관이 출국했는지를 면밀하게 확인해보겠다"며 "또 다른 편법을 통해서 특혜를 가졌는지 등을 따져보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오늘 또다시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이 허물어졌다는 점"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윤석열 정부와 전면전에 나서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관련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이 문제를 따지겠다"며 "호주 대사 임명부터 출입국절차를 통과하는 모든 과정에서 직권남용과 수사 남용 관련된 이들과 공수처, 실무 담당자들이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죠. 한 공항 직원은 "민주당 의원들과 해병대 전우회 회원 등이 지키고 있던 게이트 5곳 말고 출국장으로 향하는 다른 통로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종섭 전 장관은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에 따른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 4일 주호주 대사로 임명됐고, 5일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풀어달라고 이의신청을 제기합니다. 그런데 6일 언론보도를 통해 출국금지 조처가 내려졌던 사실이 알려지자 하루 만인 7일 공수처 조사에 응했죠. 통상적으로 수사는 하위 실무직에서 시작해 윗선으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인 과정인데, 압수물 포렌식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조사여서 "출국금지 해제 명분을 위한 조사"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법무부는 8일 출국금지심의위원회를 열고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해줬습니다. 이 전 장관처럼 직업 외교관이 아닌 경우에는 대통령이 특임공관장으로 임명해 대사 등으로 보낼 수 있는데, 특임공관장은 심지어 정년(외무공무원 정년 60살)도, 임기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 전 장관은 아직 호주대사가 아니라 대사 지명자 신분입니다. 정식 부임 뒤에 공식 대사가 되는 건데요. 대사가 교체될 때는, 전임자가 먼저 우리나라로 귀국한 뒤, 후임자와 면담하고, 이후 후임자가 출발하는 게 일반적인 절차인데, 이 전 장관의 경우 출국금지됐던 사실이 큰 논란이 되면서 이러한 절차까지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신임장도 없이 호주로 '빤스런'을 한 이종섭 전 장관. 그런데 대단한 것은 대통령실에서 이종섭 전 장관이 출국금지 상태였다는 사실에 대해 "몰랐다"고 밝히면서 "수사 상황을 일절 알 수 있는 바가 없고 공수처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뻘소리를 늘어놓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진짜 대단해졌습니다. 대사를 임명하는데, 출국금지 여부도 조회가 없이 이루어진다는 게..
이번 김종선 전 장관의 출국으로 인해 핵심 수사 대상자의 출국으로 외압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해 경찰에 넘기겠다'는 해병대수사단의 보고서에 결재한 뒤 하루 만에 이를 뒤집은 장본인인 이종섭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설'을 입증할 수 있는 연결고리였는데요. 이 전 장관은 "향후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미 호주로 출국한 이상 '대사직 업무 수행'을 빌미로 수사를 피할 것이 불보듯 뻔한 것 아닌가요?
한편 호주에서는 이종섭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지난 9일 시드니 촛불행동 회원 50여 명은 시드니의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어처구니 없는 윤석열의 피의자 도피 지시 때문에 멀쩡하게 외교 업무수행 잘 하고 있던 김완중 대사는 불과 13개월만에 본국으로 소환됐다"면서 "범죄 피의자 이종섭까지 호주 대사로 온다니 호주에 사는 재외 동포로서 이 참담한 심정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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