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표소까지 등장한 국회 법사위... 나경원 의원 간사 선임안 부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간사 선임안을 사상 초유로 기표소까지 등장시키며 표결에 부쳐 부결시켰습니다. 다른 교섭단체가 추천한 상임위원회 간사 선임을 표결로 무산시킨 것은 국회 개원 이래 처음있는 일로,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이번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나경원 간사' 카드는 봉쇄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나경원 의원의 간사 선임안을 상정했습니다. 그간 상임위 간사는 관행상 각 교섭단체의 자율 영역으로 여겨왔으나, 지난달 국민의힘이 '추미애 법사위원장'에 맞설 카드로 5선의 나경원 의원을 간사로 내정한 뒤 민주당은 줄곧 나 의원의 간사 선임에 반대하며 이를 표결에 부친 뒤 부결시킬 수 있다는 경고를 해왔죠.
그간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나 의원의 법사위 보임 이후 매번 간사 선임 건을 의사일정에 올리지 않고 국민의힘의 간사 선출 요청을 묵살해왔습니다. 그러다 전날 나 의원이 2019년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 사건으로 징역 2년(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1년 6개월, 국회법 위반 혐의 6개월)을 구형받자 곧바로 '실력 행사'에 들어갔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끝내 표결을 요구했고, 추 위원장이 "무기명투표로 진행하겠다"며 곧바로 표결을 실시한 것.
국민의힘 의원들은 "헌정사에 유례없는 폭거"라며 퇴장했고, 간사 선임안은 추미애·박지원·서영교·전현희·김용민·장경태·김기표·박균택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에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에 최혁진 무소속 의원까지 투표에 나서 총투표수 10표 중 '부(否)' 10표로 부결됐습니다. 이후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독재의 끝판왕"이라고 비판했죠.
민주당에서 나경원 의원에 대한 선임안을 부결시킨 근거는 나 의원이 '내란 사태'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패스트트랙 재판 중이라는 것. 민주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내란이 터져도 '관행', '관행' 하면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상황은 방치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고, 표결에 앞서 정청래 민주당 대표 역시 페이스북에 "오래 끌었다. 이해충돌이니 법사위는 스스로 나가라. 무슨 염치로 법사위에… 퇴장!"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추미애 위원장도 페이스북에 "나 의원의 배우자가 법사위 피감기관장인 춘천지방법원장이라 이해충돌"이라고 쓴 데 이어 "또 (패스트트랙 사건) 징역 2년형은 법사위원의 책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썼죠.
이에 대해 나경원 의원은 "민주당에서 제가 (패스트트랙 사건으로) 구형받았다고 그만두라고 하는데, 같은 논리라면 대법원에서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받은 이재명 대통령도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항의했습니다. 같은 당 주진우 의원도 "박균택 의원은 이 대통령 재판 변호하던 분이 버젓이 법사위에 들어와 있고, 박지원 의원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재판받고 있다"며 민주당 측의 '이해충돌'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나경원 의원의 간사 선임안 부결로 관행상 각 교섭단체의 자율 영역이었던 간사 선임도 표결 처리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면서 향후 22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때 다른 상임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민주당은 21대 국회인 2021년 법사위에서 민주당 간사 선출에 기립 표결을 강행한 바는 있으나 표결로 부결 처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죠. 이날 간사 선임안 부결로 정기국회 동안 법사위는 야당 간사가 없는 상태로 운영될 것으로 보입니다.
가족까지 건든 의원들... "사모님은 뭐하시냐" vs "돌아가셨다"
한편 이날 법사위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소위 '불가침' 영역인 가족사까지 들먹이며 고성을 지르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나 의원이 법원장인 남편까지 욕먹이고 있다"며 김재호 춘천지방법원장을 거론하자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남편 이야기를 왜 하느냐. 사모님은 뭐 하시느냐"고 했고, 박 의원은 "돌아가셨다"고 답한 것.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석에선 "너무 무례하다. 인간이 돼라" 등 고성이 이어졌고, 추 위원장 역시 "심하다. 지나치다. 윤리위(국회 윤리특위) 제소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박지원 의원은 "그러니까 곽 의원이 형한테도 혼나는 것"이라며 곽규택 의원의 형인 곽경택 영화감독을 소환하기도 했죠. 박지원 의원의 배우자가 2018년 작고한 사실을 몰랐던 곽규택 의원은 정회 후 박 의원에게 "의원님, 죄송합니다. 제가 몰랐습니다"라고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추 위원장은 "이 문제는 추후 논의하겠다"며 "그냥 넘기진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여야는 이 자리에서 여권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를 둘러싸고도 대립을 이어갔습니다. 박은정 혁신당 의원은 "조 대법원장은 대통령 후보를 바꿔치기 하려고 했다"며 "민주주의를 말살하려고 한 것"이라고 사퇴·탄핵을 주장했습니다. 반면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입법부의 법사위원장이 대법원장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게 잘하는 건가"라며 "지금이 봉건 국가인가"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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