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연간 1천 편 이상 영화를 제작하는 인도의 중심, 볼리우드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기념일이 있는데요. 오늘, 9월 24일은 세계 볼리우드(발리우드)의 날입니다. 인도는 예로부터 영화 산업이 발달해 현재 극장 영화를 매년 1천 편 이상 만드는 세계 유일 무이한 국가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세계에서 극장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입니다. 또한 자국 영화 점유율도 매우 높아 2015년 이전에는 90%를 넘었고, 2015년 이후로는 그나마 떨어진 것이 80%대죠. '타이타닉'도 망할 만큼 할리우드 영화도 고전하는 곳으로 악명 높죠. MPAA(미국영화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2019년 인도 영화 시장은 북미 영화 시장을 제외하곤 중국, 일본, 한국, 영국, 프랑스 시장에 이어 세계 6위입니다.
볼리우드(Bollywood)의 어원은 인도 최대 도시인 뭄바이의 영국 식민지 시절 명칭인 봄베이(Bombay)와 미국 영화 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Hollywood)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해외에서는 인도 영화 자체를 볼리우드 영화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뭄바이에서 만들어지는 힌디-우르두어로 제작된 영화만 볼리우드 영화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인도는 다민족 다언어 국가로, 영어를 통하지 않고는 모든 지역이 소통을 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 영화가 제작되고 있고, 같은 영화라 할지라도 여러가지 언어로 더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인도 내에서는 크게 볼리우드 영화 / 남인도 영화 두 축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둘의 분위기 차이 역시 상당하구요. 정확히 볼리우드 영화만 따지면 매해 300여 편으로, 매해 1,600편이 제작되는 전체 인도영화 수 중 20% 정도이긴 하지만, 이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하면 엄청난 수입니다.
'왜 여기서 갑자기 춤이...?' 마살라 영화, 화려한 춤과 노래를 즐긴다
인도 영화라 하면 스토리 진행 중 등장하는 대규모의 화려한 군무 장면 등이 연상되곤 하는데요. 이는 볼리우드 영화의 주류 장르인 '마살라(양념이라는 뜻의 힌디어) 영화'입니다. 보통 3시간을 넘어가는 긴 상영 시간, 청춘 남녀의 연애담, 얽히고설킨 가족사, 코미디 요소 등이 담긴 통속적인 스토리에 인도 특유의 음악과 화려한 군무 장면이 수시로 등장하죠. 그래서 이 '마살라 영화'를 'ABCD 무비'(Any Body Can Danc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세 얼간이(3 Idiots)'에 나왔던 'All Is Well'이 꽤나 유명하죠? 그 외에도 인터넷에서 밈이 되는 영상 중에는 볼리우드 영화 중 등장하는 군무 장면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러한 스타일의 영화는 인도의 문화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문맹 비율이 상당하고 TV 보급이 늦어 아직도 TV가 없거나 희귀한 시골이 상당한 인도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보는 영화가 상당히 중요한 오락거리이기 때문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 길게 만들며 두루 공감할 수 있는 통속적인 이야기를 주로 만들고 내용을 몰라도 즐길 수 있기 위해 춤을 영화 속에 삽입한 것이죠. 특히 북인도 지역은 힌두교의 영향으로 춤을 상당히 즐기는 분위기라 춤과 노래가 잘 먹히구요.
이것에 대해 '왜 인도 영화는 뜬금없이 춤이 나오냐'며 '병맛'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마치 한국 영화하면 우리가 쉽게 떠올리던 통속적 신파, 감초 캐릭터, 억지 감동 등과 마찬가지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즉, 얼핏 생각하면 괴상해도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숨어있는 것이죠. 하지만 볼리우드 영화도 점차 서구적인 취향의 영화를 선호하는 젊은 계층, 그리고 해외 시장을 겨냥해 해외 입맛에 맞춘 영화를 계속해 내놓으면서 마살라 영화는 아주 조금씩 밀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2017년 개봉한 영화 '시크릿 슈퍼스타'와 2020년 개봉한 '군잔 삭세나: 더 카르길 걸', 그리고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도 영화 '화이트 타이거'죠.
볼리우드 영화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비단 영화 산업 뿐만이 아닙니다. 인도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악 장르는 뭐니뭐니해도 볼리우드 영화 OST입니다. 이는, 최신 영화 뿐 아니라 수십 년 된 노래들도 마찬가지죠. 인기음악 차트는 항상 볼리우드 음악 OST가 포진해있으며, MTV와 같은 인도 음악 케이블 채널들은 볼리우드 음악 뮤직비디오를 하루에도 수 시간씩 틀어주고 있습니다. 인도 클럽에서도 이들은 볼리우드 뮤직 리믹스에 열광하며, 홈파티를 할 때도 볼리우드 음악을 틀어놓고 이에 맞춰 춤을 춥니다. 인도 결혼식(샤디)에서는 거의 뭐 콘서트 수준이구요. 저 역시 올드 볼리우드 뮤직부터 최신 볼리우드 뮤직까지 좋아하는 노래들이 많습니다.
인도의 영화관은 수준이 낮다? 전혀 아니올시다... 금액도 대만족
여담으로 인도의 극장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면, 쉽게들 '인도니까 열악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틀렸습니다. 한국에 CGV, 메가박스가 있듯 인도에는 PVR이라는 최대 영화관 멀티플렉스 체인이 있는데요. PVR은 IMAX(아이맥스) 상영관을 비롯해 4DX, 골드클래스, LASER, ICE(Immersive Cinema Experience) 등 다양한 종류의 상영관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제가 관람했던 아이맥스 스크린 크기는 용아맥처럼 크진 않았고 대략 CGV 소풍, CGV 의정부에 있는 IMAX 정도였는데, 아이맥스사가 직접 운영하는 구자라트 주 아메다바드의 IMAX 상영관 스크린 크기는 28.9m X 20.7m로 용아맥 IMAX 스크린 크기와 약 2m 차이에 불과합니다.
제 인도 영화관에 대한 경험은, 일단 우리나라에는 없는 쉬는 시간, 이른바 '인터미션'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인도 영화의 경우 애초에 인터미션을 감안해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해외 영화의 경우 좀 대뜸 영화가 잘린다는 느낌이 있긴 합니다. 이 시간에 관람객들은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매점에서 음식을 주문하곤 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춤 장면이 나왔다, 그러면 그대로 단체 댄스 타임 가는 겁니다. 관객들이 영화와 함게 춤을 즐기고 이것을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죠. 또한, 극 중 악당이 죽거나 주인공이 미션에 성공했다, 그러면 환호성과 박수 갈채, 휘파람이 쏟아져 나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했어요. 아, 예전에는 영화 시작 전 인도의 국가인 '자나 가나 마나(Jana Gana Mana)'가 연주되어 관객들이 모두 기립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티켓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는 것입니다. 시간대에 따라 그리고 좌석 위치에 따라 차등 적용되긴 하지만, 제가 관람한 티켓 가격 중 가장 저렴한 것은 IMAX가 4,000원, 골드클래스가 6,400원이었습니다. 물론 물가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상영관의 퀄리티도 훌륭해서 리클라이너 좌석이 숱하게 배치되어 있고, 사운드 역시 좋았습니다. 다만 영화관 매점의 가격은 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비쌌습니다. 코카콜라 캔 하나가 밖에서는 40루피(약 640원)이고, 레스토랑에서도 100루피(1,600원) 수준인데, 콜라 한 잔(R)을 370루피(6,000원)에 팔더라구요. 팝콘(170g)과 450ml 콜라 2잔 콤보가 1,280루피(20,480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상영 전, 인터미션 시간에 점원들이 모든 좌석을 일일이 방문해서 주문이 필요한지 묻고 가곤 합니다. 티켓 가격을 저렴히 하고 매점에서 메꾸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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