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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 문재인, 그는 누구인가?

자발적한량 2012.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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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민주통합당의 서울경선이 끝나면서 최종적으로 과반득표를 달성한 문재인 후보가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확정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저는 심히 기쁜 마음을 갖고, 또한 대선 출마가 유력시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야권이 힘을 하나로 합쳐 다시 한번 정권교체의 새 역사를 쓰기 바라는 마음에서 뉴시스의 '[민주후보 확정]대통령 후보 선출된 문재인은' 기사를 스크랩하는 것으로 오늘의 포스팅을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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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후보 확정]대통령 후보 선출된 문재인은

뉴시스 | 손대선 | 입력 2012.09.16 16:28


【고양=뉴시스】손대선 기자 = 친노(친 노무현)의 대표주자로서 국민들의 눈길을 모았던 문재인 후보는 2007년 청와대를 나온 이래 정치권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뿌리치며 경남 양산에서 부인 김정숙씨와 야인(野人)으로 살아왔다.


범야권의 거듭된 강권에 못이겨 그가 본격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은 물리적 시간상으로는 불과 반년 남짓.


4·11 총선에서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부산에서 민주당 유일의 지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것이 그의 정치적 이력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16일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문 후보는 타 후보들을 압도적인 표차로 물리치고 18대 대선 본선에 나서게 됐다.

◇뻥뚫린 천장 아래서 울던 초등생 인권변호사 되다

문 후보는 1953년 경남 거제에서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계란행상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가난을 숙명처럼 지고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지만 여전히 가난했다고 한다. 문 후보는 "사라호 태풍 때는 지붕이 날아가 뻥 뚫린 천장 아래에서 울어야 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생활고 때문에 이른 새벽 암표장사를 해보려고 어린 문재인을 데리고 부산역까지 갔던 어머니는 아들 앞에서 끝내 불법을 저지르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당시 허기를 달래려고 베어물었던 토마토의 맛은 '가난'이었다고 문 후보 측근들은 전했다.

문 후보는 대학 재학 시절 내내 그는 시위 현장에서 빠지지 않는 학생으로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그가 대학에 재학하던 시절은 긴급조치로 상징되는 암흑기였다.

현대사의 비극이던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반 유신 열기도 높아져갔다. 그는 1975년 4월 경희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한 후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마친다.

고(故) 리영희 선생의 '베트남전쟁'을 통해 미국과 우리사회의 허위의식을 깨닫게 됐다는 그는 제대후 복학해 사법시험 2차까지 치른 다음 79년 합격자발표를 앞두고 시위 참여를 이유로 동대문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가 유치장에서 사시 합격 통보를 받게 된다.

사법연수원 차석졸업이라는 영광을 얻었지만 시위 전력 탓에 판사 임용의 꿈은 끝내 좌절된다. 그리고 곧바로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부산에서 개업한 노무현 변호사의 사무실이 첫 공식직장이었던 셈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에서 시국사건 특히 노동자 관련사건의 동반 변론에 자주 나서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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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친구'란 의미는

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급을 종합해보면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에게 '영원한 비서실장'이라기보다 '영원한 친구'에 가깝다.

노 전 대통령이 변호사이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그리고 마지막 비서실장으로서 노 전 대통령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언론에 소개된 노 전 대통령 사진을 보면 문 후보가 자주 등장한다. 표정이 다양한 노 전 대통령에 비해 문 후보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흰 머리카락 아래 굳게 다문 입과 엷은 미소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2009년 5월23일 오전 11시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공식 발표하던 문 후보는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비극의 순간에도 담담함을 잃지 않았던 그에게서 많은 이들은 정치인으로서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수줍은 새색시 같은 정치 첫발

문 후보는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도우면서 사실상 정치인으로 데뷔했다.

그해 10월13일 광화문 광장에서 예정에 없던 찬조연설에 나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저는 지금 박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서울시민 여러분께 처음 인사를 드린다"며 "선거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지원유세 생전 처음"이라고 정치 초년생으로서의 수줍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저도 박 후보처럼 (정치는)'제가 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정치에)거리를 둬 왔다"며 "노무현 재단을 잘 운영해서 노 대통령 추모기념 사업 잘 하는 것이 제 몫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노 대통령 정신을 발전시키고 확신시키는 것을 잘 해내면 제 책임을 다 해낸다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긴장한 듯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그는 자신이 직접 정치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할 때에는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문 후보는 "지금 정치 현실은 그렇게 지켜보고 비판만 하기에는 너무 암울하고, 절망스럽다"며 "6월 항쟁 이후 피땀 흘려 이룬 민주화, 남북평화가 이명박 정부 하에서 총체적으로 무너졌다"고 말했다.

또 "양극화, 고용불안, 청년실업이 갈수록 심해져서 보통사람들, 성인들,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자살률도 OECD중 최고라고 하지 않는가. 노인 가구중 절반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했다.

◇선한 이미지는 '강점', 권력의지는?

문 후보의 가장 큰 경쟁력이 '인품'과 '선한 이미지'에 있다는 것은 정치권 안팎의 일치된 의견이다.

권위주의와 계산된 행보가 도무지 오버랩되지 않는 문 후보의 '착한 정치인' 이미지는 정치권의 부패와 독선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국민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의 성품을 잘 나타내는 일화 두 가지.

지난해 10월18일 도봉구 방학동 도깨비 시장에서 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울 당시 문 후보는 덤덤한 웃음으로 시민들에게 박 후보를 위해 한표를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이미 정치적 무게감이 더해가고 있던 문 후보는 이날 시민들을 만나며 단 한번도 자신의 이름을 직접 말하지 않고 박 후보를 우선 소개하는 배려를 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31일 온 나라가 전북 나주 초등학생 어린이 성폭행 사건으로 분노해 있을 당시 문 후보는 때마침 태풍 '볼라벤'이 불어 닥쳐 큰 피해를 입은 나주 남평읍 평산3리를 방문 중이었다.

기자가 사건이 난 현장을 찾아 온국민에게 민심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하자 문 후보측은 이를 거절했다. '보여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마치 생전에 노 전 대통령이 '보여주기'를 위해 전통시장을 찾는 것을 거부했듯이 말이다.

길지 않은 공직 생활기간 동안 권력의 핵심에 있으면서도 부패 관련 구설수에 단 한 번도 오르내리지 않았던 그였지만 착한 이미지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대통령 당선을 위해 필수적인 권력의지가 늘 의심받고 있는게 사실이다. 때로 연약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올해 1월 그가 SBS TV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기왓장 격파시범에 도전하는 등 '강한 남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특전사 전우회가 주관하는 행사에 공수부대원 복장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쓰고 참가하는 등 감춰둔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4·11 총선과 대권도전 선언

올해 4·11 총선은 문 후보에게 금뱃지를 달아주었지만 지역주의의 벽이라는 큰 벽을 실감케 한 자리이기도 했다.

이같은 벽을 의식하듯이 대선에 임하는 문 후보의 각오는 자신의 캠프 대변인을 맡고 있는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은유된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현 정부 하에서의 경제·문화·교육 정책 등이 무한경쟁사회 속에서 인간소외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진단한 그는 혁신과 통합으로 사람의 본래 가치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치않는 정치참여였지만 후퇴한 역사를 제 자리로 갖다놓기 위해 대권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겠다는 소명의식은 "현 정권의 시민정치에 대한 혐오와 부정, 무시"에서 비롯됐다며 보수정권이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진보정권 10년에 대한 복권을 희구했다.

참여정부 공과를 둘러싼 비문(비 문재인) 주자들과 여권의 비판을 의식한듯 "저는 친노가 확실하고 친노라는 딱지를 떼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정치인 문재인은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서겠다"며 "그가 멈춘 그곳에서, 그가 가다만 그 길을 머뭇거리지 않고 주춤거리지 않고 갈 것"이라고 강조해 참여정부의 계승·발전을 자신의 지향점으로 제시했다.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 시험대

문 후보는 2010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포스트 노무현'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문화는 지나치게 상대방을 배제하고 부정하고 더 나아가 적대시했습니다. 도저히 인정하지 않는 거죠. 리더십도 그랬어요. 앞으로는 상대방을 포용하는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겠죠."

문 후보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과의 야권단일화와 대선 본선이라는 두개의 큰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이 두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자신이 말한 리더십을 비로소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1953 경남 거제 ▲부산남항초 ▲경남중·고 ▲경희대 법대 학사 ▲1975년 학생운동으로 투옥, 서대문 구치소 수감 ▲육군 병장(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 만기제대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 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법무법인 부산 설립 ▲노무현 대통령후보 부산 선거대책본부장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청와대 비서실장 ▲고(故) 노무현 前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18대 국회의원

sds110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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