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썰을 풀다

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양심냉장고' 주인공 김종명 씨 키워낸 '어른 김장하', 남성당한약방에서 한국을 지탱할 보통 사람들을 키워내다

자발적한량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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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환원, '어른 김장하'의 삶

김장하 선생.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교육인, 시민활동가입니다. 1944년 경남 사천의 가난한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김장하 선생은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후 삼천포의 한 한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공부를 한 끝에 만 18세 전국 최연소 나이로 한약업사 시험에 합격해 '남성당한약방'을 차렸습니다. 이 '남성동한약방'은 저렴한 가격에 품질 좋은 약재를 쓰고, 약의 효험도 좋다는 입소문이 나서, 연일 전국에서 몰려드는 손님들에게 새벽부터 대기 번호표를 뽑아서 나눠 줘야 할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죠. 직원이 20명 가까이 됐는데, 직원들의 월급도 다른 약방의 2~3배나 됐다고 하구요.

 

남성당한약방은 전국 한약방 가운데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한약방이기도 했는데, 이는 김장하 선생이 그만큼 성실하게 납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약 50년간 운영된 남성당한약방은 2022년 5월 말, 김장하 선생이 은퇴하면서 문을 닫았죠. 그런데 김장하 선생은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지원에 사용했습니다. 일평생 수많은 사회운동과 자선사업을 하며 나눔을 실천한 독지가였던 것이죠.

 

그는 1983년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해 이듬해 100억 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해 0여 년간 이사장을 하면서 체육관과 도서관 등 모든 학교시설을 완비한 후에 1991년 아무런 조건없이 국가에 기부채납하는 전례가 없던 기부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대 젊은 시절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남몰래 장학금을 주었고, 지금까지 김장하의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 1000명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죠.

 

또한 1990년대 시민주로 창간했던 옛 <진주신문>의 주주·이사로 참여했고, 국립 경상대학교 최초의 기부 건축물인 남명학관을 건립하는데 앞장섰으며, 지금은 진주를 대표하는 지역서점이 된 진주문고가 어려웠던 시기 지역서점을 살리기 위해 두 차례나 큰 도움을 주었고, 여성평등기금 조성을 통해 가정폭력 피해여성 지원에도 힘쓰고, 호주제 폐지 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여성 인권 운동에도 아낌없이 지원했습니다.  남명학, 진주오광대, 진주솟대놀이가 재조명되는 데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고 하죠.

 

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양심냉장고' 주인공 김종명씨

김장하 선생의 도움을 받은 사람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는 바로 얼마 전 퇴임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입니다. 문형배 전 권한대행은 2019년 4월 9일 국회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장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독지가인 김장하 선생을 만나 대학교 4학년까지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사법 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고 언급하며 "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해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히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줬다"고 말했죠.

 

문형배 전 권한대행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김장하 선생은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이 사회에 갚아라"라고 말했고, 문 권한대행은 "그 말씀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면서 "법관의 길을 걸어온 지난 27년 동안 저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한민국 헌법의 숭고한 의지가 우리 사회에서 올바로 관철되는 걸 찾는 데 전력을 다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제가 재판관으로 임명되더라도 초심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이다"고 존경의 뜻을 밝힌 바 있죠.

 

문형배 전 권한대행은 실제로 김장하 선생의 뜻을 삶에서 실천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청문회 당시 그의 재산은 6억7545만원으로 신고됐고, "너무 적은 거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최근 통계에서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재산이 한 3억원 남짓 되는 거로 아는데 제 재산은 (아버지 재산을 제외하면) 4억원이 조금 못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평균 재산을 좀 넘긴 거 같아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죠.또한 퇴임 뒤 계획에 대해선 "영리 목적의 변호사 개업 신고는 하지 않겠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또 한 사람의 '김장하 장학생'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2022년 MBC경남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서 김장하 선생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서울에서 진주로 내려온 김종명씨. 김종명씨는 김장하 선생이 설립하고 국가에 헌납한 명신고등학교의 7회 졸업생으로, 학창시절 장학금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와 재회한 김장하 선생은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돼서 죄송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했죠.

 

그런데 김종명씨가 2016년 MBC 에브리원 ‘PD 이경규가 간다-양심 냉장고’의 주인공이었던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서울 여의도 횡단보도 앞, 이경규는 정지선을 지키는 시민을 찾기 위해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수의 차량과 오토바이는 신호를 위반하거나 정지선을 넘었죠. 그러다 조용히 멈춘 한 차량이 있었는데, 이 차의 운전자가 바로 인근 증권사에 근무하던 김종명씨였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지킨다"며 "예전에 '양심 냉장고'를 보고 감동받아 그런 질서는 꼭 지키려 한다"고 말한 그는 "빨간불이었으니까요"라고 당연한 듯 한마디를 던졌죠. 그리고 그는 20년만에 다시 찾은 양심 냉장고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자신의 삶을 '기록되지 않은 삶'으로 남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제자들의 말과 행동으로, 오늘도 조용히 기록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누구보다 단단하게 사회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이들 속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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