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노무현 장학금'이냐 '노무현 대통령이 수여한 장학금'이냐가 아니다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 측의 달콤한 단일화 제안을 연거푸 거절한 뒤 대선 레이스 완주 의지를 밝히며 한껏 몸값을 높이고 있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이준석 후보는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6주기를 맞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묘역을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노무현 대통령께서 저한테 직접 장학 증서를 주시면서 저에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대한민국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새기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천호선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언급한 이준석 후보를 향해 구역질이 난다고 맹비난하고 나섰습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천호선 전 이사장은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태도를 바꾸고 마치 자기 개인에게 노대통령이 특별한 덕담을 한 것처럼 거짓말을 해대기까지 하는 것에 구역질이 난다. 교활하다"고 말했습니다. 천 전 이사장은 "대통령과학장학생은 김대중 정부서 입안하고 노무현 정부인 2003년부터 시행됐다. 과기부가 주관한 것이고 현재 노무현재단서 선발하는 노무현장학생 과는 다르다"며 "청와대 영빈관에서 백 몇십 명 정도 매년 수여했는데 이준석도 그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26일 이준석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장학 증서를 받은 이야기를 하니까 무슨 제가 '노무현 장학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가 노무현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유포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저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국가에서 주는 장학금의 장학 증서를 받은 것이지 노무현 재단의 노무현 장학금을 수령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준석 후보는 "전두환 대통령 시기에 국비 유학을 다녀온 사람을 '전두환 장학생'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이건 자명한 것"이라며 "오히려 제가 '노무현 장학금을 받았다' 하면 허위사실 유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하는 한편 "교묘하게 이 두 가지를 섞어서 이야기하고 모 언론사는 제가 말을 바꿨다는 식의 이야기를 통해 후보자 비방하는 기사를 내고 있다"며 "오늘 오전 중으로 정정보도를 하지 않을 시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죠.
'노무현 팔이'로 민주당 연성 지지층 표 가져와 보려는 교활한 선거 전략
이준석 후보는 자신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는 측에서 '교묘하게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에서 주는 장학금의 장학 증서를 받았다는 것'과 '노무현 재단의 노무현 장학금'을 섞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항변했지만,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용한 것은 이준석 후보 본인입니다. 천 전 이사장의 말처럼 '백 몇십 명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 마치 본인에게 특별한 덕담을 한 것처럼 침소봉대를 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용하는 모습은 천호선 전 이사장의 표현처럼 구역질이 나기 그지없습니다.
이준석 후보의 말이 맞습니다. 이 후보는 '노무현 장학금'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주는 대통령 과학장학금'의 장학증서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손으로부터 건네받은 것이 맞습니다. 지난 2017년 7월 12일 위키트리의 '위키 라이브-이언경의 작은 방 큰 토크'에 출연해 해당 장학금에 대해 "친노에 계신 분들이 저를 깔 때 많이 쓰는 아이템"이라며 "너는 어떻게 노무현 장학금을 받아가지고 노무현 대통령이랑 정치 노선을 다르게 걷냐라고 하는데 말이 안 되는 게 노무현 장학금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때 대통령 과학장학금을 받은 것이다. 쉽게 말하면 국비 장학생"이라고 말한 바 있죠.
당시 이준석 후보는 "그 장학금을 만든 분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만든 장학금을 노무현 대통령 때 받아서 저는 유학한 것"이라고 말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관성을 부인하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준석 후보를 교활하다고 여기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엮이고 싶지 않아서 저런 언급을 할 정도로 애썼던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와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특별한 추억이 있었던 마냥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팔고 있는 것이 재수가 없는 것이죠.
이 뿐만이 아닙니다. 25일 이준석 후보는 전국 유권자들에게 발송된 대통령선거용 선거공보물을 통해 자필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 속에서 이준석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한 탓에, 저를 '박근혜 키즈'라 부르는 분들도 계셨다"면서 "그러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인연이나 감정과는 별개로, 저는 자신을 '노무현 키즈'라고 부르고 싶다"고 또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죠. 이준석 후보는 "제가 기억하는 정치인 노무현은, 남들이 만류하는 선거에 7전 8기 도전하며, 할 말은 꼭 하고, '모난 돌'의 역할을 주저하지 않았던 분"이라면서 "노무현처럼 살고 싶었다. 시련이 올 때마다 '이럴 때 노무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되물었다"면서 "역사상 최연소 여당 대표라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이 모든 여정은 '노무현 정신' 덕분이었다고 믿는다"고 적었죠.
이준석 후보가 편지 속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한 것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게 할 만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시련을 감내하면서까지 3당 합당거부 등 소신을 지켜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이, 현재 단일화에 대한 회유와 압박을 쏟아내고 있는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정당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상황에 갖다 붙이기 제일 '근사한' 롤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준석 후보처럼 '편가르기' 정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준석 후보가 연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고 '노무현 정신' 계승을 자처하는 이유는 바로 민주당의 연성 지지층을 공략하려는 치밀한 계산에서입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표를 가져와 승리한 이른바 '동탄 모델'을 그대로 적용해 '이재명의 상대'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아니라 민주당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이준석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죠. 하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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