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썰을 풀다

백범 김구 살해한 안두희를 '정의봉'으로 때려죽인 버스기사 박기서 씨 별세, 사적제재의 명과 암

자발적한량 2025.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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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 씨가 오늘 별세했습니다. 박기서 씨의 유족들은 "박기서 씨가 0시 10분경 경기도 부천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향년 77세. 

 

안두희는 해방 후 서북청년회 활동을 한 극단적 반공주의자였습니다. 육사 8시 졸업 후 남조선국방경비대 장교로 임관해 포병사령부 소속 포병 소위였던 안두희는 김구를 암살하기 몇 달 전 김구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 인사들이 대거 활동했던 한국독립당에 입당해 김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죠. 안두희는 수 차례에 걸쳐 김구 암살을 시도했었습니다. 한번은 김구가 기르던 개가 사납게 짖어대는 바람에 김구의 집에 들어가지 못해 암살에 실패했고, 두 번째로 공주에서 열린 김구의 강연회에서 그를 암살하려 했지만 강연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또 다시 실패했죠.

 

그리고 세 번째 시도가 바로 1949년 6월 26일 김구 암살 사건. 안두희는 육군 정복 차림을 하고 김구가 기거하던 경교장(현 강북삼성병원 부지 내)을 찾아 비서진에게 "백범 선생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말하고 김구가 있던 서재를 찾았습니다. 글씨를 쓰고 있던 김구에게 "선생님, 먹을 갈아 드릴까요?"라고 물은 뒤 김구가 고개를 들어 안두희를 보려는 순간 미제 권총을 꺼내 약 1미터 거리에서 김구를 향해 4발의 총탄을 발포했고, 김구는 결국 현장에서 사망했죠.

 

경교장 경비들에게 잡혀서 헌병사령부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된 안두희는 "김구가 남북 협상을 통해서 정치 사회에 혼란을 주고 공산주의자들을 자극시키고 찬동시키는 범죄를 저질렀다"면서 참다 못해 김구를 죽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승만은 한독당 내부의 집안싸움이라는 담화를 발표했구요.

 

이후 안두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육군형무소에 수감됐으나 형기가 15년으로 감형됐다가 1년 뒤 6·25 전쟁이 발발하자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어 군에 복귀했습니다. 정치권에서 석방 논란이 일었으나 오히려 안두희의 계급은 소위에서 소령으로 2계급 특진을 했고, 예편 후 강원도 양구군으로 건너가 군납공장을 차려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는 등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호의호식했습니다.

 

그런데 1960년 4·19 혁명 이후 안두희의 체포를 요구하는 한 시민의 시위를 시작으로 학생들에 의해 안두희의 대저택이 파괴되는 한편 6월 26일 심산 김창숙이 백범 사망 11주기 추모식장에서 "선생을 저격한 안두희를 죽여라! 그리고 그 배후 조종자인 이승만을 규탄하자!"고 절규하자 위기감을 느낀 안두희는 잠적합니다.

 

이후 안두희는 1961년 4월 17일 '백범김구선생살해진상규명위원회' 간사 김용희에게 붙잡혀 재판을 받았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풀려나게 됩니다. 같은 달 28일 효창공원에서 열린 '백범 암살사건 배후자 규탄대회'에서 시민 3,000여 명이 국회의사당까지 가서 가두시위를 벌였으나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 쿠데타로 이 또한 허사가 됐죠.

 

안두희는 1965년 독립운동가 집안인 곽태영에게 칼을 맞은 것을 비롯해 1987년엔 민족정기구현회장 권중희에게 '정의봉'을 맞아 갈비뼈와 머리가 깨졌고, 같은 해 노송구에게 각목으로 얻어맞기도 합니다. 1992년엔 권중희가 안두희를 납치해 가평으로 끌고가 진실을 고백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죠. 

 

안두희는 김구 암살이 본인의 단독 범행이라고 말한 것을 비롯해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인 특무대 대장이었던 김창룡의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고, 권중희에게는 이승만의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다음에는 미국이 시킨 일이라고 얘기하는 등 수시로 말을 바꿨습니다. 1994년 국회 법사위 '백범 김구 선생 암살 진상규명 소위원회'에선 실어증을 이유로 침묵했구요.

 

그리고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경, 부천시 버스회사 소신여객의 버스 기사였던 박기서 씨는 40cm 정도의 홍두깨에 '정의봉'이라고 적은 뒤 이를 들고 안두희의 자택인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 동영아파트 502호에 침입해 안두희의 동거녀를 장난감 권총으로 위협해 안방에 밀어넣은 뒤 안두희의 손을 나일론 끈으로 묶고선 '정의봉'으로 때려죽입니다. 당시 박기서 씨는 중간에 숨이 차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면서 안두희를 두들겨 팼다고 알려졌는데요. 나중에 경찰이 와서 보니 방 안에는 피가 흥건했고, 피 묻은 정의봉이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하죠.

 

이후 박기서 씨는 부천으로 돌아가 심곡본동 성당에서 이준희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했고, 이준희 신부는 박기서 씨에게 토스트와 우유를 제공한 뒤 경찰에 자수를 권유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기서 씨는 권중희를 불러 함께 택시를 타고 인천중부경찰서를 찾아 자수한 뒤 기자회견을 가졌죠. 안두희의 시신은 화장되어 한강에 뿌려졌는데, 조문객이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안두희의 빈소 옆에서 다른 고인의 장례를 챙기던 장의사가 보다 못해 아무도 없는 빈소에 대신 촛불을 켜 주기는 했다고 하죠.

 

반면, 박기서 씨에게는 안두희 처단을 응원하는 취지의 격려금과 편지들이 쏟아졌습니다. 사회 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백범 암살범 안두희 처단 박기서 의사 석방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박기서를 위해 변론하겠다는 변호사들이 줄을 섰고, 박기서의 아들이 다니던 태권도 학원 관장은 아들의 수업료를 면제해 줬다고 합니다. 백범기념사업회에서 그의 아내에게 취업자리를 알선해 줬고, 박기서 본인은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출소할 때까지 매달 100만 원씩을 생활비로 받았다고도 밝히기도 했죠.

 

박기서 씨는 살인죄로는 유래없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는데, 우히려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왜 무죄를 선고하지 않았냐며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살인죄의 최소 법정형인 5년을 법률상 감경사유가 없음에도 판사가 자기 재량으로 감경(작량감경)해준 것이죠. 이후 박기서 씨는 1998년 3월 1일 3.1절 대사면 때 대상자에 포함되어 3월 13일에 1년 4개월만에 출소했습니다.

 

이후 부천에서 택시기사로 일해온 박기서 씨는 2004년 각종 친일반민족성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김완섭을 구타하며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3년 8월 4일엔 장준하 선생 사망 당시 "약사봉에서 추락했다"고 증언해 그의 죽음을 의문사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김용환을 찾아가 따귀를 때리며 추궁을 하기도 했죠. 그리고 두 사건 모두 김완섭과 김용환이 처벌 불원서를 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박기서 씨에 대해서는 사적 제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모두 존재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백범 김구 선생을 살해하고도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합당한 처벌은커녕 부를 축적하고 호의호식한 살인범을 단죄했다는 점은 명확한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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